문서사료 5건
더 보기-
[유인태의 상황을 호소하고 석방을 바라는 문]
등록번호 : 00521111
날짜 : 1978.05.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금영균
요약설명 :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라는 불법단체가 불순세력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확증을...
-
民靑學聯 사건 公訴事實 요지(민청학련 사건 공소사실 요지)
등록번호 : 00524653
날짜 : 197*.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상철
요약설명 :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라는 불법단체가 불순세력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확증을...
-
옥중서신
등록번호 : 00843891
날짜 : 1978.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라는 불법단체가 불순세력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확증을...
사진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더 보기-
제2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요약설명 : 이 사건과 관련하여 약 90여건의 사료가 소장되어 있다. 중요사료로는 인혁당 사건의 진상을 처음으로 상세히 밝힌 성명서 <인혁당 사건 진상을 조사 발표하면서>(등록번호 : 108139)가 유감스럽게도 일부만 남아있다. <인혁당 조사 결과>(등록번호 : 476278)는 번역물로 문장은 매끄럽지 않으나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정보, 사건의 조작성, 시노트 신부의 증언, 사형과 시체탈취 과정, 외국신문 기사 등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중요사료다. 인혁당 관련자들의 모습은 『8월 인혁당 사건 공판에서 피고자 도예종 등 13명』(등록번호 : 709843)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인혁당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을위한대책위원회의...
-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
요약설명 : 사건과 관련한 중요사료는 1974년 4월 3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명의의 <민중 민족 민주선언>(등록번호 : 480510)으로, 당시 학생운동의 사상적 수준을 보여준다. <민중 민족 민주선언>은 “소위 유신이란 해괴한 쿠데타 국가 비상사태와 1.8 조치 등으로 이어진 폭압체제”라고 유신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남북대화는 영구집권을 위한 장식물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7.4공동선언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민생, 민권, 민중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료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민중 민족 민주선언>은 원본이 아니라 독일에서 발간된 신문에 결의문이 생략된 채 부분 개제된 것이다. 1973년 4월 3일...
사료 콘텐츠 4건
더 보기-
총무님, 총무님, 우리들의 총무님_ 김한림
요약설명 : 앞에 나서지 않은 채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구해오고 돈이 필요하면 돈을 구해오는, 말 그대로 민주화운동에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우리나라가 반드시 민주화되어야 한다고 믿는 한림이지만 딸 윤만은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가급적이면 이 역사의 광풍을 피해 가기 바랐다. 그날, 악수를 하고 집을 나선 윤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헤어진 딸을 몇 달 만에 군사 법정에서 만난 것이다. 학생들의 시위가 예년보다 심해지자 박정희 정권은 1974년 4월 3일, 유신헌법 비판에 대해 최고 15년 형을 내릴 수 있는 이전의 긴급조치와 달리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긴급조치 4호를 선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4월...
-
길 위에 선 어머니들
요약설명 : 모여 유신과 폭압적인 긴급조치에 저항하기 위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이름으로 민중민족민주선언 성명서를 낸 것을 빌미로 정부를 전복하고 폭력혁명을 일으킬 목적이 있다는 죄를 날조하여 학계 종교계의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였다. 한림은 윤이가 경찰서에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도 열흘이 지나서야 서대문 교도소에서 윤이를 만날 수 있었다. 면회실에서 사색이 다 된 어머니를 본 윤은 밝게 웃어보였다. “엄마, 나 괜찮아요. 여학생이라고 고문도 안하고 많이 봐줬어요.” 민청학련 관련자 1천여 명 중에는 여학생이 몇 명 안 되었다. “약도 못 먹고 몸은 괜찮아?” “감옥체질인가? 하나도 안...
-
민청학련사건 - “사형선고를 받아 영광입니다!”
요약설명 : 따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라는 이름을 달기로 하고 일부 유인물에 이를 명시했다. 군사정권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서강대 시위가 실패한 3월 하순부터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어 최초 주동자였던 서중석 등 수백 명이 끌려갔다. 중앙정보부는 이들을 고문해 전국적인 공산주의자 조직을 조작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약속한 4월 3일, 서울의 주요대학에서 산발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서울대 의대생 5백 명이 흰 가운을 입고 가두로 진출하려다 봉쇄되기도 하고 이화여대 3천 명이 채플시간에 선언문을 낭독하고 이중 40명이 청계천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독재정권을 긴장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이날 밤 10시,...
구술 컬렉션 6건
더 보기-
허종현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8.22./전주시 문화빌딩 휴스템코리아
요약설명 : 1971년 전북대 학생운동의 주역들 - KSCF 활성화에 전력, 전북대 학생운동과 종교, ...
-
손인범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6.12./익산시 우리배움터
요약설명 : 전북대 학생운동의 인맥 - 1970년대 전북 출신의 민주화운동 관련자 - 기독교청년회...
-
정지성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8.23./청주시
요약설명 : 연행된 충북대 학생들 - 1970년대 청주산업선교회, 청주제일교회의 활동과 역할, 충북...
일지사료 10건
더 보기-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사건 발생
일자 : 1974.4.3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전학생, 시민은 오후 2시 시청 앞 광장, 청계천 4~5가에 집결할 것.”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4월 3일 민청학련이 북한의 사주에 의하여 정부전복을 기도하였다며 긴급조치 4호를 밤 10시를 기해 선포했다. 이후 학생을 중심으로 1,024명이 연행되어 253명이 군법회의에 송치되고 그중 169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조선일보』 1974.04.04. 1면; 『경향신문』 1974.04.04. 1면; 『동아일보』 1974.04.04. 1면; 『매일경제』 1974.04.04. 1면; 『중앙일보』 1974.04.04. 1면;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1983. 『1970년대 민주화 운동과 기독교』, 276쪽; ‘세계 최악의 사법살인, 조작부터 사형까지 박정희 작품’ 『한겨레』 2011.11.14.;...
-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관련 대통령긴급조치 4호 선포
일자 : 1974.4.3
분류 : 정치·국제관계 > 정부·여당
요약설명 : 10시 헌법 53조에 의한 대통령긴급조치 제4호를 선포,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과 이에 관련되는 제단체를 조직하거나 가입 또는 그 활동을 찬양, 고무, 동조하는 등 일체의 행위와, 학생의 정당한 이유 없는 출석·수업·시험의 거부, 학교 내외의 집회·시위·성토·농성, 기타 일체의 개별적 집단행위를 금하고, 이를 위반하거나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15년 이하의 자격정지병과)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긴급조치 4호는 또 문교부장관이 이 조치에 위반한 학생에 대한 퇴학 또는 정학의 처분이나 학생의 조직, 결사, 기타 학생 단체의 해산 또는 이 조치 위반자가 소속된 학교의 폐교 처분을...
-
민관식 문교부장관, TV 대담에서 “불순활동 계속되면 폐교도 불사” 언명
일자 : 1974.4.4
분류 : 정치·국제관계 > 정부·여당
요약설명 : 4호가 선포된 배경 설명과 함께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의 유인물 내용과 배포 방법 등을 밝혔다. 민장관은 이날 “불법 지하단체인 민청학련이 전국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까지 침투, 계급투쟁과 노동자 농민 궐기를 선동하는 등 북괴와 동일한 주장을 하면서 일종의 공산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기도했다는 확증을 잡았다”고 밝혔다. 민장관은 또 “전국 고교와 대학 구내에서 불온 삐라가 수만 장이나 나왔고 이 불법단체의 책동이 북괴의 인민혁명을 획책하려는 전 단계에 있다고 판단, 이같은 지하조직이 더 뿌리박히기 전에 선량한 다수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의 제반조치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민장관은 “학교 폐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