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604건
더 보기-
임대주택쟁취 보고 및 강제철거결사저지를 위한 1990년 서울시철거민협의회 대중총회
등록번호 : 00875778
날짜 : 1990.04.2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철거민(도시빈민)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철협의 총회 보고서 80년대...
-
김대중 정부의 철거민 생존권 말살 조작극-개발지역에는 사제총이 있다?
등록번호 : 00886249
날짜 : 1999.08.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철거민-경찰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건설자본과 정권의 검은 뒷거래가...
-
전국철거민연합 남경남 의장, 고천만 부의장 선고공판과 철거민 생존권 말살에 대한 성명서
등록번호 : 00889291
날짜 : 1999.03.13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혐의로 수원구치소에 구속 수감 중인 전국철거민연합 제 5기 의장단에 대한 1심...
사진사료 224건
더 보기-
[철거민과 학생 3백여명이 종묘공원에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
등록번호 : 00834020
날짜 : 1996.02.24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겨레신문사
요약설명 : 24일 오후 철거민과 학생 3백여명이 서울 종로3가 종묘공원에서 열린 '철거민 고 신...
-
서울의 6월항쟁. 명동성당에서 강제철거 반대 농성 중인 상계동 철거민의 시위
등록번호 : 00957319
날짜 : 1987.06.15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철거민들이 YMCA회관 앞에서 더 이상 못 속겠다. 거짓정권 몰아내자'는 플래카드를...
-
철거민 돕기 활동을 펼치는 박찬미의 모습
등록번호 : 00714542
날짜 : 2000.10.0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이룬 서울 남가좌동 재개발 현장의 철거민 텐트 앞에서 철거민을 돕기 위한 활동의지를...
박물사료 4건
더 보기-
뚝방 철거민들과 함께 드리는 성탄 예배
등록번호 : 00049152
날짜 : 1991.12.23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한국도시연구소
요약설명 :
-
천사협 월례미사-7월지향:철거민들과 함께[포스터]
등록번호 : 00389289
날짜 : 1984.07.16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역사문제연구소
요약설명 :
-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우리는 인간다운 사회의 실현을 위해 일합니다[스...
등록번호 : 00459597
날짜 : 1990.00.00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울산민주시민회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더 보기-
광주대단지 사건
요약설명 : : 47022)는『신동아』에 실린 르뽀 기사로, 당시 광주대단지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광주대단지사건이 당시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빈민문제에 대해 많은 충격을 주고 관심을 갖게 했음은 광주대단지사건 두 달 후 생산된 <廣州大團地 貧民實態調査 報告書>(등록번호 : 115687)와, 10여년이 지난 1985년 목동, 신정동 철거민 문제와 관련된 사료 <14년전 광주대단지 민권투쟁을 상기하자!, 반 민중적 군사독재정권은 물러가라!>(등록번호 : 89545)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10건의 사진 중 <개울가에서 모여 있는 광주대단지 사람들>(등록번호 : 713724), <경찰과 대치 중인 광주대단지 주민들>(등록번호...
-
목동 철거민 투쟁
요약설명 : : 48127)는 손으로 기록한 일종의 실태조사로, 철거민의 삶을 계속해 온 목동 주민들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다시 어디로 가야 하나?-목동.신정동 주민 이젠 오갈 데도 없다>(등록번호 : 72458)는 안양천 변 움막집부터 시작해 어렵게 삶을 일궈오다 또다시 철거를 당하게 되자 이렇게 절규한다. “재산세, 취득세, 하천부지사용료를 받아먹은 당국이 이제 무허가 건물이라고 나가라고 한다면 도대체 서울시가 시민을 위하여 있는 겁니까, 괴롭히려고 있는 겁니까? … 20년 전 우리들을 청소차로 허허벌판에 내던져 버리고 나서 벽돌 한 장 시멘트 한 부대 주어 보았습니까? 상하수도 생각하였습니까. 못나고 무식한 게 죄 인줄 알고 그냥...
사료 콘텐츠 6건
더 보기-
어둠의 자식들의 아버지 - 허병섭 목사
요약설명 : 그는 이철용과 함께 빈민 스스로가 만든 최초의 민중 교회인 사랑방교회를 세워 철거민들을 그리스도의 사랑 안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사랑방교회마저 철거가 되던 날, 화려하게 빛나지는 않았지만 멀리서 바라만 봐도 힘이 되었던 십자가는 철거반원들에 의해 똥통에 처박히고 말았다. 당시 위급한 상황에 함께 했던 문익환 목사는 똥 묻은 십자가를 치켜들고 통곡했다. 이듬해에는 3‧1민주구국사건으로 많은 민주인사들이 구속되었다. 허병섭 역시 연행되어 조사받고 고문당하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리고 이어진 6개월의 수배생활 끝에 그는 하월곡동에 자리를 잡고 교인들이 교회의 주인이 되는 민주 교회를 지향하는 동월교회를 세웠다. 그는...
-
목동 상계동 철거민투쟁
요약설명 : “폭력 경찰 물러가라! 철거민도 사람이다! 연행자를 석방하라!” 늦은 밤이었지만 주민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구호를 외쳤다. 그들이 오목교에서 목동 거리 쪽으로 행진하며 시위를 벌이자, 이들을 막아선 경찰이 주민들을 무차별 구타하며 마구 끌고 갔다.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가 목동에 대한 실상 조사 결과를 시민들에게 알렸고 서울대, 이화여대 등에서도 목동 시위의 경과와 동기를 학보에 게재해 대학생들의 지지를 받았다. 서울시의 철거반이 들이닥쳐 판자촌을 뒤엎는 일이 발생하자, 물러설 곳이 없는 주민들은 시위로 맞섰다. 경찰의 무차별 구타와 폭행으로 수많은 부상자가 속출했다. 주민들은 여의도 신민당사를 점거하여...
-
명동에는 명동성당이 있다
요약설명 : 깨끗이 쓸고 물을 뿌렸다. 마침 그곳에서 오랫동안 천막살이를 하고 있던 상계동 철거민들이 시위 학생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부상당한 학생들을 위해 자리도 만들어주었다. 처음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지나가자 조금씩 성당 부근의 공기도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마침 그때 박씨가 근무하던 은행 지점도 그 부근에 있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던 은행원 박씨는 어릴 적부터 소심한데다 겁이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시사문제와 관련된 이야기에는 아예 담을 쌓고 사는 편이었다. 정부가 하는 일이 좀 못마땅한 점이 있어도 그냥 참고 넘어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최루탄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 좀 안쓰러운...
구술 컬렉션 3건
더 보기일지사료 10건
더 보기-
성산동 철거민들, 서울시청서 농성
일자 : 1970.3.27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27일 오전, 서대문구 성산동 19통 1반 철거민 1백여 명은 서울시청에 몰려가 “대책을 마련해 주고 철거하라”고 요구하며 김현옥서울시장을 만나려다 경찰의 제지로 1시간 만에 해산했다. 지난해 3월 북아현동 시민아파트 건립을 위해 북아현동, 대현동 일대 판잣집을 철거할 때, 셋방에 들어있던 3백여 가구는 성산동 하천부지에 임시로 판잣집을 짓고 살아왔는데, 지난 3월 아파트가 완공되어 집주인들이 모두 입주해 버리자 셋방 살던 이들은 판잣집마저 헐리고 갈 곳이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주민 박봉렬 씨(36)는 “24일에 계고장을 받았는데 26일 인부들이 나와 강제로 판잣집을 헐어버려 갈 곳이 없게 됐다”면서 당국의 무성의한...
-
한남동 철거민들, 서울시청서 농성
일자 : 1970.3.27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27일 오전 11시, 서울시가 중산층 아파트 부지로 책정한 용산구 한남동 산8 일대 주민 1백여 명이 시청에 몰려와, “양성화해 주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아파트를 위해 집을 헐려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약 2시간 동안 항의농성을 벌였다. 이 일대는 서울시가 오는 4월 1일 중산층 아파트 4동을 지을 계획이다.『조선일보』 1970.3.28. 8면
-
김대중 후보의 민정 시찰
일자 : 1970.12.21
분류 : 분류없음 > 재야·야당·지식인·종교인
요약설명 : 김대중신민당 대통령후보는 광주지구철거민 이주단지를 시찰하였다. 이날의 시찰에서 김대중 후보는 이주민단지의 실태보고를 들었다.『민주전선』 1970.12.31.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