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25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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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피복 노동조합 정상활동에 대한 협조 요청[수신:김용복]
등록번호 : 00079093
날짜 : 1984.05.2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청계피복 노동조합 정상활동에 대한 협조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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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피복 노동조합 복구대회 이후 주요 사건경위
등록번호 : 00079099
날짜 : 1984.04.1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84년4월8일~4월14일까지 청계피복 노동조합 복구대회 이후 주요 사건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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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피복노동조합의합법성
등록번호 : 00101679
날짜 : 198*.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어제와 오늘 청계피복노동조합의 합법성 여부에 관한 법률적 검토...
사진사료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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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청계피복노동조합
등록번호 : 00915867
날짜 : 1988.11.13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노동자대회에 참가한 청계피복노동조합이 여의도에 도착하여 노동악법철폐을 외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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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피복노동조합 사무실탈환 기념 및 전진대회 속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
등록번호 : 00701662
날짜 : 1987.07.2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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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 노동조합 전진대회 및 문화 대동제에 나와 노조의 합법화 추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등록번호 : 00702844
날짜 : 1988.03.13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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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분신
요약설명 :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노동운동 관련 사료이며 전태일기념사업회 정간물 『사람세상』, 기념식 관련 자료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전태일의 일기 중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 형식으로 쓴 글 <대통령각하> (등록번호 : 445053), 전태일 사후 장례식 조건 타결 후 운구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 <오열하는 사람들과 운구하는 사람들> (등록번호 : 733459), 1981년 청계피복노조 해산과정에서(추정) 계엄포고령 및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된 이소선 지원 및 전태일 추모사업을 위한 모금을 알리는 자료로 전태일의 일기와 남긴 글을 편집 하여 작성된 <나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등록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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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맹파업
요약설명 : 연대 투쟁선언-노동 운동 말살 정책을 말살하자>(사료번호 : 359519)는 구로동맹파업의 시작을 알리고 있으며, <노동자 연대 투쟁선언-노동 운동 말살 정책을 말살하자>(사료번호 : 359519)를 통해 연대투쟁의 결의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구로동맹파업은 민주화운동 단체들과 종교단체, 학생운동의 엄청난 관심과 지원투쟁으로 이어졌다. 이와 관련한 자료로 101405, 395393, 303923, 211492, 313332, 216662 등을 볼 수 있다. 구로지역 노동자들의 삶과 구로동맹파업의 전체 흐름과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부모님 전상서[대우어패럴 노동운동 관련]>(사료번호 : 359263), <대우어패럴 노동조합탄압에 항쟁하는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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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피복노동조합결성투쟁
요약설명 : 청계피복노조와 관련하여 366건이 소장되어 있다. 청계천 일대 평화시장 등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피복업계 노동자들의 임금실태 보고서 <시장상가 피복제품업체 근로자의 임금실태 조사결과> (등록번호 : 512069), 윤보선, 함석헌 등 15인의 사회 각계 인사들이 청계피복노조 탄압에 항의하여 발표한 <국민에게 드리는 글> (등록번호 : 528466), 1981년 서울시의 청계노조 해산명령에 대하여 명령철회를 요구하며 발표한 <성명서> (등록번호 : 333357), 전태일 죽음 이전부터 청계노조 20주년의 역사를 기록한 <청계노조 20년 투쟁사> (등록번호 : 441463), 1984년 청계피복노조를 복구하여 정상화시킬 것임을 주장한...
사료 콘텐츠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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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요약설명 : 각계에서 응원과 격려가 쏟아졌다. 1970년 11월 27일, 전태일이 죽은 지 14일 만에 청계피복노조 결성식이 열렸다.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 560명을 대표한 대의원 56명이 모인 자리에서 소선은 입을 열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지켜냅시다. 나 또한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내 아들, 태일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의 노동자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날까지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노동조합을 지켜내기는 쉽지 않았다. 사장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을 받아주지 않았고, 자기 직원들에게도 노동조합에 가입하기만 하면 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일꾼들에게는 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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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들의 희망공동체 - 한국여성노동자회
요약설명 : 어느 땐 데 한가하게 여성문제나 얘기하고 있는가?” “여성문제는 노동문제가 해결되면 자연히 해결된다.” 여성운동은 부르조아 여성들이나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1986년 당시 여성노동자문제를 바라보는 노동운동의 내의 관점이 이러했다. 준비모임은 수차례의 세미나를 거치며 독자적인 여성노동자운동 조직의 필요성에 대한 확신을 굳히고 창립준비를 해나갔다. 그 중심에는 1970년대 민주노조의 주축이었던 콘트롤데이타, YH무역, 세진전자, 반도상사, 서통, 청계피복, 고미반도체 등 노동조합 출신의 활동가들과 한국여성평우회 출신의 여성 활동가들이 있었다. 드디어 1987년 3월 21일, 여성노동자회 준비모임은 창립대회를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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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청년 재단사의 꿈
요약설명 : 어린 여공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며 어려운 노동법을 읽고 이상적인 공장을 꿈꾸던 아들이었다. 하지만 분신까지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제 사십대 초반의 과부인 그녀에게는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 “태일이 엄마, 설마 죽겠어요? 어서 병원에 가봐요.”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위로하고 있을 때, 아들의 친구인 김영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택시를 타고 왔다. 김영문은 어서 병원에 가자고 재촉했다. 그러나 이소선은 담담히 말했다. “영문아, 택시를 그냥 보내라.” 다들 택시를 타라고 했지만 그녀는 끝내 택시를 보내고 버스를 탔다. 자신이 무얼 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아들의 뜻을...
구술 컬렉션 6건
더 보기일지사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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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신피혁 근로자. 민종진의 장례식장에서 농성 진행
일자 : 1977.7.10
분류 : 민주화운동 > 노동
요약설명 : 벌어졌다. 해산당한 노동자들은 노동청으로 몰려가 “①청계피복 노동자들의 임금을 32%로 서울시가 조정한 것을 이행하라 ②인선사 유령노조를 철폐하고 해고당한 5명을 즉각 복직시켜라 ③동일방직 기숙사 문제와 유재길 동지를 복직시켜라 ④반도상사 기숙사 문제를 해결하라 ⑤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⑥방림방적은 잔업수당을 지급하라 ⑦남영나일론은 임금을 인상하라 ⑧노동청장은 물러가라” 등을 요구하였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내용에 대하여 노동청과 합의를 보지 못하자 재차 농성을 시작하였다. 이에 영등포서는 기동대를 동원하여 노동자들을 무수히 구타하고 42명을 연행해 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주노조 투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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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교 성직자 및 재야인사 15명, 청계노조 폭력 탄압 규탄문 발표
일자 : 1977.9.20
분류 : 민주화운동 > 노동
요약설명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Ⅲ), 1987, 1159~1161쪽; 이옥지, 『한국여성노동자운동사』 1, 한울아카데미, 2002, 327쪽; 『한국민주화운동사연표』, 322쪽.「(청계피복지부 노동조합 탄압에 붙여) 국민들에게 드리는 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1970년대 민주화운동』 (Ⅲ), 1987, 1160~1161쪽. 삼가 국민들에게 호소합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생명이 경제성장과 수출증대의 도구로 전락하고 소수 특권층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현 정부의 정책으로 말미암아 수백만 근로자가 고통을 당해야 하는 일이 어찌 어제오늘의 일이겠습니까만, 지난 9월 9일 청계천 연변의 평화시장 일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