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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공화국의 수립과 모습

5.16쿠데타로 장면 민주당 정권을 몰아내고 정권을 탈취한 군부는 구악을 일소하고 경제를 재건하고, 통일을 위한 실력 배양을 한 뒤에는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인계하고 군 본연의 임무에 복귀하겠다고 공약했다. 어찌 보면 이들의 공약은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것보다는 경제발전과 실력배양에 방점이 찍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일들이 1, 2년 사이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기에, 미리 장기집권을 예고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혁명재판을 통해 과거 부정선거사범을 비롯한 구 정치인들을 거세한 뒤 중앙정보부를 창설하여 국민을 철저히 감시하면서 1963년 2월 26일 공화당을 창당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른바 4대의혹사건에 관여한 사실이 밝혀져 이를 두고 ‘구악’에 대비하여 ‘신악’이라고 비아냥을 받았다.
그리고 62년 12월 26일에 내각책임제를 대통령제로 환원하는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붙여 확정한 뒤, 국회에는 전국구제도를 도입하는 등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그리고 마침내 63년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윤보선 후보를 16만여 표의 아슬아슬한 표차로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리하여 비로소 제3공화국이 탄생한다.
대통령선거에 이어 곧바로 11월 26일에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하여, 33.5%의 득표율에 그친 공화당이 전국구 제도 덕분에 의석의 62.8%에 해당하는 110석을 차지하는 거대정당으로 등장한다.
3공화국은 반공을 전면에 내세우고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철저히 미국에 의존하는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정보정치를 통해 국민을 철저히 감시하고, 성장 일변도의 경제개발을 추진하여 기층 민중의 희생을 강요한 권위주의 정권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곧바로 국민의 반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무리한 한일회담을 추진하고, 분단을 무기로 안보위기를 조성하여 공포정치를 실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