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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공 시절 계엄 상황

박정희 정권이 무리하게 한일협정 체결을 밀어붙이자 학생과 국민들이 연일 데모를 벌여 굴욕적인 한일회담 중지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회담 추진의 주역인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제2의 이완용이라고 불려도 좋다’며 회담 추진을 강행했다.
그러자 학생과 시민들의 반대 시위는 더욱 격화되어 일본의 이케다 수상 화형식을 벌이고, 배후에서 회담을 종용하는 미국에 대해서도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등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이후 공수부대원들이 법원에 난입하여 시위대학생들에게 관대한 판결을 한 판사를 협박하는 등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급기야 6월 2일에는 청와대로 향하는 수천 명의 시위대와 군인, 경찰이 대치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더욱 불어난 시위군중이 국회로 향하면서 군용트럭을 탈취하는 등 시위가 격화되자 박정희 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여 대대적인 검거와 시위진압에 나선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탱크가 장악하고 있는 모습은 3공화국의 실상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