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컬렉션
독립운동가 서재필
서재필(徐載弼, 1864~1951) 선생은 17세에 과거에 급제하면서, 김옥균, 서광범 등 개화파 인사들과 교류를 갖게 된다. 1883년에는 도쿄의 육군유년학교에 입학하여 1년 동안 공부한 뒤 고종에게 권유하여 조련국을 설립한다.
18세 때인 1884년에 김옥균 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 만에 실패로 끝나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1889년에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수구파인 명성황후 일파가 몰락하자 1896년에 귀국하여 중추원 고문에 임명되었다. 이때 《독립신문》을 발간하면서 이상재, 이승만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결성하고, 독립문을 세우는 등 활발히 활동했으나 다시 미국으로 추방된다.
필립 제이슨(Philip.Jaisohn)이라는 이름으로 펜실베이니아에서 병원을 개업한 뒤에도, 계속 상해 임시정부와 긴밀히 협조하면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47년에는 귀국하여 미군정청 고문으로 있었으나 이승만과의 불화 등의 이유로 미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
사진은 미군정청 최고 의정관으로서 인천항에 도착하여 환영을 받고 있는 서재필 박사와 그의 딸 뮤리엘의 모습이다. 그리고 맨 오른쪽에 김규식 선생이 보인다.
18세 때인 1884년에 김옥균 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 만에 실패로 끝나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1889년에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수구파인 명성황후 일파가 몰락하자 1896년에 귀국하여 중추원 고문에 임명되었다. 이때 《독립신문》을 발간하면서 이상재, 이승만 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결성하고, 독립문을 세우는 등 활발히 활동했으나 다시 미국으로 추방된다.
필립 제이슨(Philip.Jaisohn)이라는 이름으로 펜실베이니아에서 병원을 개업한 뒤에도, 계속 상해 임시정부와 긴밀히 협조하면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1947년에는 귀국하여 미군정청 고문으로 있었으나 이승만과의 불화 등의 이유로 미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
사진은 미군정청 최고 의정관으로서 인천항에 도착하여 환영을 받고 있는 서재필 박사와 그의 딸 뮤리엘의 모습이다. 그리고 맨 오른쪽에 김규식 선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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