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컬렉션
윤봉길 의사 의거 기념식
매헌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11살 때에는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하였지만 그 이듬해에 일제의 식민지 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자퇴한 뒤, 한문학을 공부하였다.
19살부터는 농촌부흥운동과 계몽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이 강화되자, 1930년에 중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중국의 여러 곳을 전전하다 상하이에 있던 임시정부로 김구를 찾아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다짐하였다.
마침 일본군은 일본 국왕의 생일인 천장절과 전승 기념식이 성대하게 열리게 되자, 김구 등지도자들과 협의하여 거사를 구상하였다.
1932년 4월 29일 도시락 모양의 수류탄을 감추고 식장에 입장하여 연단에 수류탄을 던졌다. 이로 인해 시라카와 일본군 대장 등 거물 여러 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윤봉길은 현장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그해 12월 19일에 24세의 젊은 나이로 총살형에 처해졌다.
윤봉길의사 생가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한 충의사에서 열린 42돌 추모식에 참석한 많은 참배객들과 34주년 추모식에서 제사장들이 엄숙하게 제를 올리고 있다.
19살부터는 농촌부흥운동과 계몽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이 강화되자, 1930년에 중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중국의 여러 곳을 전전하다 상하이에 있던 임시정부로 김구를 찾아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다짐하였다.
마침 일본군은 일본 국왕의 생일인 천장절과 전승 기념식이 성대하게 열리게 되자, 김구 등지도자들과 협의하여 거사를 구상하였다.
1932년 4월 29일 도시락 모양의 수류탄을 감추고 식장에 입장하여 연단에 수류탄을 던졌다. 이로 인해 시라카와 일본군 대장 등 거물 여러 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윤봉길은 현장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그해 12월 19일에 24세의 젊은 나이로 총살형에 처해졌다.
윤봉길의사 생가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한 충의사에서 열린 42돌 추모식에 참석한 많은 참배객들과 34주년 추모식에서 제사장들이 엄숙하게 제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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