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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공 신익희 선생

해공 신익희 선생은 경기도 광주 출생으로, 일제시대 와세다대학에 다니면서 교포 학생들과 학생운동을 조직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교육자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3.1운동에 참여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하였다. 광복 후에는 김구와 정치노선을 달리하여 이승만과 가까이 하였으며, 미군정하에서 남조선과도입법원 의장에 취임하기도 하였다. 제헌국회에서는 국회 부의장에 피선되었으며, 의장이던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에는 국회의장에 피선되었다. 그 후 김성수 등과 함께 민주국민당을 창당하여 위원장에 취임하였으며, 제2대 국회에서 다시 국회의장에 피선된다.
1955년에는 민주국민당을 민주당으로 확대 발전시키고, 1956년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이승만과 경쟁했다. 1956년 5월 4일 밤, 호남지방 정견발표 유세를 위해 열차를 타고 가다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졸도, 병원으로 옮겼으나 5월 5일 새벽 사망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이승만 정권의 교체를 바라던 많은 시민들은 슬퍼하며 그를 추모하기 위해 장례식에 몰려들었다.

해공 신익희 선생의 국민장은 1956년 5월 23일 오전 11시 서울운동장에서 수많은 조객들이 애통해 하는 가운데 엄숙하게 집행되었다. 장의식을 마친 후 선생의 영구는 수많은 시민들의 호위 호송을 받으며 장지인 우이동으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