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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의원 연금에 항의하는 측근인사들

5.17이 일어나면서 가장 먼저 시련이 닥쳐온 것은 김대중이었다. 중앙정보부로 끌려간 김대중은 48일만에 7월 4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수괴가 된다. 김대중은 11월 3일 육본 계엄고등군법회의를 거쳐 1981년 1월 23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고, 82년 3월 3일에는 징역 20년으로 감형되었다. 1982년 12월 16일 김대중은 청주교도소에서 서울대 병원으로 이송됐다가 1주일 후인 23일 형 집행정지로 풀려난 후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후 한국의 민주화투쟁이 활기를 띠고 유화국면과 더불어 새로운 바람이 불자 김대중은 귀국한다. 1985년 2월 8일 수십만의 인파는 그를 열렬히 환영하고 신민당 돌풍이 일어난다. 돌아오자 그는 가택연금을 당해야했다. 그가 자유로운 몸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아직도 2년 6개월을 더 기다려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