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4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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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사태 출판국의 진상
등록번호 : 00085456
날짜 : 1975.03.27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동아사태에 동조한 출판국 사원에 대한 해임과 출판부 폐지에 대한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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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사태에 대한 外信ㆍ外紙 報道 ①
등록번호 : 00481903
날짜 : 1975.04.2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뉴욕타임즈, UPI, 마이니치, AP 등 외신의 동아사태 관련 기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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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事態」의 眞相은 이렇다
등록번호 : 00483435
날짜 : 1975.03.1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동아사태의 진상에 대한 동아일보사의 보고서
영상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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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ㆍ동아일보 기자 해직 사태
요약설명 : 소식지인 <조선투위 소식>(등록번호 : 486505 외)과 ‘동아 자유언론수호 투쟁위원회’의 소식지인 <동아투위 소식>(등록번호 : 417066 외)을 비롯해서 이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각종 성명서(등록번호 : 395098 외)와 담화문 등을 소장하고 있다.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백서>(등록번호 : 109677 외)도 눈에 띈다. 주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과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에서 기증받은 사료들이다. 한편 <동아투위가 동아일보사에 보내는 공개장>(등록번호 : 486172)과 투쟁 과정에서 구속된 이들의 명단이 담긴 구속자명단(등록번호 : 521205)도 소장하고 있다. 박물류로는 1975년 동아투위를 돕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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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언론탄압
요약설명 : 노조원들을 위한 <알림>은 동아일보 탄압의 긴급한 상황과 행동방침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記協 東亞日報分會 알림>(등록번호 : 89854), <알림>(등록번호 : 43060), <알림 No. 2[동아일보분회원들에게 결의를 다지자는 내용의 글]>(등록번호 : 78318)은 무더기 해약사태가 벌어진 12월 20일부터 백지광고를 결의한 12월 26일 사이의 상황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自由言論實踐綱領>(등록번호 : 18843), <「東亞」事態의 眞相>(등록번호 : 577494)도 살펴볼 만 하다. 조선 동아 기자 해직사태와 관련, 80여건의 사료를 소장하고 있다. 린다 존스가 기증한 동아투위 3월 25일자 <선언문>(등록번호...
사료 콘텐츠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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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사진전과 개인 기록물
요약설명 : 동아일보는 사태 발생 10일 만에 계엄군 투입이 개시되어 도청을 비롯한 주요 건물을 장악하였다고 보도했다. 리영희 선생이 스크랩한 신문 기사는 광주 시위를 선동한 간첩을 검거했다는 소식, 연합사 소속 한국군의 광주 진압 동원 요청에 주한미군 사령관이 동의했다는 소식도 포함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의 국정원 평가 및 육·해군의 기록 등 조사 결과 근거 없음으로, 후자의 경우 1980년 주한미대사관이 미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을 통해 미국이 병력 배치를 고려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뒤늦게 광주로부터 도착한 기록과 사진 항쟁이 종료된 후에도 신군부는 5.18의 진상이 확산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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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들의 목소리, 동아일보 백지광고
요약설명 : 아껴 모은 저금통을 턴 주부, 점심을 굶고 광고비를 지불한 수영선수도 있었다. 백지광고는 민초들의 목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사람들은 신문 나오기를 기다려 광고면을 펼치고 민초들이 쏟아내는 다양한 소리를 꼼꼼히 읽었다. 1975년 1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 동안 게재된 격려광고는 총 2,943건에 이르렀으며 2월에는 5,069건을 기록했다. 동아일보 격려광고가 쇄도하고 있던 1975년 3월,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경비절감을 이유로 기자와 사원을 연이어 해고했다. 3월 12일에 기자들은 제작거부 농성에 들어갔고, 3월 17일에 끌려나와 거리의 기자가 되었다. 동아사태의 진상이 알려지면서 격려광고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격려광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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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가는 역사를 되살리는 생명의 기록
요약설명 : 사표를 던졌다. 유신의 칼바람에도 직필로써 언론인의 직분을 다하고자 했던 동아일보 기자들이 대량 해고되는 사태에 책임을 지고 편집국장이 스스로 해직의 길을 선택했다. 자유언론 실천을 외친 젊은 기자들을 해직하라는 사주의 압력에 저항하여 후배 기자들이 해직되기 전날 스스로 사임의 길을 걸었다. 돈이 없어 술과 담배를 배우지 못했다던 사람, 속세와 타협하지 않고 한길을 가려면 자기 주변 정돈을 잘해야 한다고 당부하던 사람,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많은 말을 늘어놓지 않았던 사람, 그런 그는 우리 역사의 질곡을 마지막까지 짊어지듯 절대 침묵과 고독 속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다. 송건호 선생은 지금도 언론인들로부터 가장...
구술 컬렉션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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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정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8. 8. 28/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4.18시위 경험, 동아일보 입사와 동아사태, 동아투위 활동, 10.26사태와 혼미 정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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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면담자 : 한승동
일자/장소: 2021.10.25. / 서울시 종로구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요약설명 : 동아일보 입사, 동아일보의 역사, 여운형과 3‧1운동, 유신 체제 이전의 언론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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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만
면담자 : 배병욱
일자/장소: 2021.10.6. / 서울시 중구 동아투위 사무실
요약설명 : 사태와 본격적인 자유언론수호투쟁의 시발점이된 '그날'의 동아일보사 분위기 집안...
일지사료 83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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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영일 을 재선거에서 어부지리
일자 : 1960.1.12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요약설명 : 현석호, 그리고 무소속의 김익로가 출마하였는데, 김익로는 자유당의 집중 견제를 받아 민주당에 협조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선거구 각 면에 1개 경찰서가 있는데 자유당은 김익로의 기존 세력 분쇄를 위해 경찰을 각 동네마다 고정배치하여 유권자들에게 위협을 가하였다. 이보다 앞서 재선거 공고 이전부터 김익로의 심복이나 추정자들이 제거되기 시작했다. 1월 5일부터는 그 같은 사태가 표면화되어 2명의 면장이 사표를 내고 10여 명의 경찰관이 타지방으로 전출되었으며 군청 계장급 인사 5명도 전출되었다. 이에 김익로 측근 중 수리조합 이사 및 농업협동조합장은 사표를 내고 사라지기도 하였다. 자유당의 이같은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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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서 자유당 입당 강요 사태
일자 : 1960.1.20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자유당 입당을 강요하는 사태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구에서는 대구 시내 200여 전(全) 동네에 걸쳐 각 방단위로 3인조·5인조·9인조의 형태로 당원 포섭 공작이 적극적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동네 방장들은 자유당 입당원서를 자신의 방원들에게 돌리며 입당을 강요하였다.『동아일보』1960. 1. 21 석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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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지역, 재선거 하루 앞두고 비상사태 돌입
일자 : 1960.1.22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사태 분위기로 인해 완장부대가 나타나기도 하였으며 통행금지 시간 이후에도 골목에 경찰이 배치되어 경계를 계속하였다. 민주당은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중앙선거위원회에 영주 지역 4개 투표소에 투표함을 1개씩만 설치해 줄 것을 긴급 요청하였다. 22일 오후 주요한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중앙선거위원회가 반역적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주요한은 영일 을구와 영주 재선거에 공개투표를 방지할 아무런 방법도 강구하지 않음으로써 중앙선거위원회가 공개투표를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김두일 중앙선거위원장이 일전에 국회에서 “투표구에 투표함을 1개씩 두고, 투표소 100미터 이내의 출입을 허용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