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8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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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 9일 사법살인" 인혁당재건위사건 재심청구/상고·항소이유서 자료집
등록번호 : 00430166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인혁당사건진상규명및명...
요약설명 : -재심청구서 -의문사진상 규명위원회 조사자료 -상고이유서 -항소이유서 -성명서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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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하여
등록번호 : 00827063
날짜 : 1988.11.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인민혁명당사건 관련 자료. '인혁당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하여' 자료집 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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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죽음들, 인혁당 사건 그 후 25년
등록번호 : 00827065
날짜 : 2000.04.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잊혀진 죽음들, 인혁당 사건 그 후 25년' 인혁당 사건 관련 자료집 및 지로용지 1부 ...
사진사료 1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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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법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인혁당사건 피고들
등록번호 : 00709838
날짜 : 1965.05.2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부장판사)는 인혁당사건의 원심(도예종씨 징역3년, 양춘우씨 징역2년, 11명 무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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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사건 2회 공판에서 검찰 신문을 거부하는 양춘우
등록번호 : 00709839
날짜 : 1964.12.03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인혁당사건 제2회 공판이 서울지법 대법정에서 도예종씨 등 13명의 피고가 출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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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 첫공판에서 피고인 도예종 등 13명 모습
등록번호 : 00709842
날짜 : 1964.11.24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인혁당사건 13명에 대한 첫공판이 서울지법 대법정(부장판사 원종백)에서 열렸다....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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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요약설명 : 이 사건과 관련하여 판결문, 도예종의 항소이유서, 신문스크랩, 사진 등 6건의 사료가 소장되어 있다. 사건의 발생과 진행과정은 신문스크랩 <인혁당사건관련 자료모음>(등록번호 : 492089)을 통해서 볼 수 있으며, <1차 인혁당 사건 판결문>(등록번호 : 534960)을 통해 박정권의 인혁당 사건 조작 시도가 여실히 무너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인혁당 사건 공판에서 피고자 도예종 등 13명 모습>(등록번호 : 709842)에서는 1차 인혁당 관련자의 면면을 볼 수 있다. 이 외에 1차 인혁당 사건의 시발이 되었던 한일회담 반대투쟁과 관련하여 145건의 사진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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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요약설명 : 이 사건과 관련하여 약 90여건의 사료가 소장되어 있다. 중요사료로는 인혁당 사건의 진상을 처음으로 상세히 밝힌 성명서 <인혁당 사건 진상을 조사 발표하면서>(등록번호 : 108139)가 유감스럽게도 일부만 남아있다. <인혁당 조사 결과>(등록번호 : 476278)는 번역물로 문장은 매끄럽지 않으나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정보, 사건의 조작성, 시노트 신부의 증언, 사형과 시체탈취 과정, 외국신문 기사 등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중요사료다. 인혁당 관련자들의 모습은 『8월 인혁당 사건 공판에서 피고자 도예종 등 13명』(등록번호 : 709843)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인혁당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을위한대책위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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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글 목사, 시노트 신부 강제추방사건
요약설명 : 상황과 본인의 심경을 직접 타이프로 작성한 사료 <한국으로부터 국외 추방을 강요당하는 사연의 글>(등록번호 : 515212)이 있다. 또한 <1974.12.14 하네다공항에서 발생한 조지 오글 목사 기내 억류에 대한 일본 이민국의 조치를 묻는 편지>(등록번호 : 471763)는 인혁당 사건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 극도의 제재를 가했던 박정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단면이다. 그 외에 오글 목사가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중심으로 벌였던 산업선교활동을 볼 수 있는 다수의 사료가 있다. 시노트 신부와 관련하여, 인혁당 사건 사형 이전인 1975년 3월에 그 부인들과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시신부가 인혁당 사건 관련자 부인과의 인터뷰>(등록번호...
사료 콘텐츠 2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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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지킨 푸른 눈의 양심들, 월요모임
요약설명 : 미국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했다. “이것이 당신들의 조용한 외교인가?”라는 피켓을 들고서 인혁당사건으로 전격 교수형을 당한 8인을 상징하는 검은 두건과 올가미를 자기 목에 두른 채 침묵시위를 벌였다. 그날의 시위 사진은 <타임>지의 아시아판 표지에 실렸다. 이 충격적인 시위 사건은 그들 자신에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각인되어 오랫동안 그들의 뇌리에 남았다. 인혁당사건이란 박정희 정권이 조작한 대표적인 국가폭력사건이었다. 유신정권은 “인혁당재건위가 공산주의 국가건설을 목적으로 학생들을 선동해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다”고 발표하고 관련자 8명을 1975년 4월 9일 전격 처형했다. 문정현, 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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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나면 누구고 나와서 꺼야한다.‘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법정스님
요약설명 : 이른바 인혁당사건이었다. 유신 헌법이 발효되자 학생, 시민, 민주계 인사 등의 유신철폐 개헌서명운동이 일어났고, 이에 박정희 정권은 끔찍한 고문과 함께 1975년, 이른바 ‘2차 인혁당사건’ (일명 인혁당재건위사건)이라 불리는 정치 조작극을 벌인다. 도예종 등 사회주의 성향을 보이는 한 무리의 인사들을 국가전복 기도 혐의로 구속, 재판에 회부한 것이다. 그들에게 사형이 언도되고 대법원 상고가 기각되자 채 20시간도 지나지 않은 바로 그 이튿날 여덟 사람 전원을 사형시키는 사법사상 유래가 없었던 만행을 저질렀다. 이를 목격한 법정 스님은 큰 충격을 받았다. “죄 없는 그들을 우리가 죽인 거나 다름이 없다고 자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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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바로 알자 - 「인혁당」 및 「민청학련」사건의 진상”
요약설명 : 00483338)’는 1975년 2월 인혁당재건위사건(제2차인혁당사건) 관련자로 사형당한 (故)이수병 씨의 아내 이정숙 씨가 관련자의 구명 활동과 재판부에 제출하기 위해서 만든 문서 사료이다.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에서 2005년에 사료관에 기증했으며 1975년 이정숙 씨가 생산했다. 다른 많은 국가폭력사건 관련 기록들과 마찬가지로 사료관이 소장하고 있는 인혁당재건위사건 기록들은 국가 기관에 인혁당사건으로 기소된 피해자의 가족 및 민주화인사, 시민사회가 맞서는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공소장과 정부발간물에 담긴 정부의 주장 인혁당사건 피의자들은 중앙정보부(중정)가 주도한 수사 과정에서 전기고문, 물고문 등 각종 고문과...
구술 컬렉션 2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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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수
면담자 : 임송자
일자/장소: 2009.6.4.(1차), 7.8.(2차)/한국노동사회연구소
요약설명 : 인혁당 사건,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와 한국노총 중앙조직에서의 활동, 한국노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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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교
면담자 : 김재범
일자/장소: 2020.11.5. / 대구 구술자 자택
요약설명 : 하재완 열사의 삶, 본인 유가협 활동에 대한 이야기 인혁당 사건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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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동
면담자 : 윤충로
일자/장소: 2020.11.4.~11.18. / 고양시 구술자 자택
요약설명 : 인혁당사건 가족들의 목요기도회 참석과 1975년 4월 10일 당시 상황 어린시절 이야기,...
일지사료 7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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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종·김정강학생데모 배후로 수배
일자 : 1964.7.6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혐의로 수배되자 도주, 김정강의 상부선으로 그를 배후에서 조종했다.『경향신문』 1964.7.7 석3면불꽃회 사건1964년 7월 6일 정부는 “학생 데모를 공산 세력이 배후에서 조종한 증거 문건을 압수하고, 도예종(당시 41세, 1975년 2차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과 김정강(서울대 정치학과 3년)을 국가보안법 위반 및 내란 소요 등의 혐의로 각각 현상금 10만 원씩 전국에 수배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7월 18일 내무부장관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집결체인 불꽃회가 학생 데모를 배후에서 조종했다”며 김정강과 김정남 등 30여 명의 이름을 계보도와 함께 발표했다. ‘불꽃회 사건’이 터진 것은 김정강이 조직 구상을 하면서 메모해 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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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지령 받고 국가변란음모 지하조직” 중앙정보부, ‘인민혁명당’ 41명 구속
일자 : 1964.8.14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들이 서클을 구성한 적이 있었음은 인정할 수 있지만, 북괴에 동조하는 인혁당 강령 심의에 참여한 사실이 없으며, 그 강령 내용을 알았다는 점을 인정할 수도 없고, 그 밖에 북괴에 동조한 사실 또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무죄 이유였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발표한 어마어마한 국가변란사건은 용두사미로 끝을 맺었다.검찰이 제기한 항소심에서는 1심판결을 모두 파기하고 13명의 피고 전원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했는데, 대법원에서도 상고 기각판결을 내려 항소심 형량이 그대로 확정되었다.(이상우, 「민족일보·인혁당 사건의 전말」, 『신동아』, 1985년 6월호, 336쪽) 제1차 인혁당 사건은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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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검, 인혁당 사건 관련자 구속기소
일자 : 1964.9.5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5일 상오, 서울지검 공안부는 앞서 중앙정보부로부터 구속 송치된 인민혁명당사건 관련자 47명중 도예종 등 26명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나머지 21명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또는 불기소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동아일보』 1964.9.5 석7면, 『경향신문』 1964.9.5 석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