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8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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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 9일 사법살인" 인혁당재건위사건 재심청구/상고·항소이유서 자료집
등록번호 : 00430166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인혁당사건진상규명및명...
요약설명 : -재심청구서 -의문사진상 규명위원회 조사자료 -상고이유서 -항소이유서 -성명서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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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원회 지도위원 취임 동의서
등록번호 : 00034765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윤영규
요약설명 : 인혁당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원회 지도위원 취임 동의서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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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하여
등록번호 : 00827063
날짜 : 1988.11.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인민혁명당사건 관련 자료. '인혁당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하여' 자료집 및 ...
사진사료 1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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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법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인혁당사건 피고들
등록번호 : 00709838
날짜 : 1965.05.2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부장판사)는 인혁당사건의 원심(도예종씨 징역3년, 양춘우씨 징역2년, 11명 무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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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사건 2회 공판에서 검찰 신문을 거부하는 양춘우
등록번호 : 00709839
날짜 : 1964.12.03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인혁당사건 제2회 공판이 서울지법 대법정에서 도예종씨 등 13명의 피고가 출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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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 첫공판에서 피고인 도예종 등 13명 모습
등록번호 : 00709842
날짜 : 1964.11.24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인혁당사건 13명에 대한 첫공판이 서울지법 대법정(부장판사 원종백)에서 열렸다....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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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요약설명 : 이 사건과 관련하여 판결문, 도예종의 항소이유서, 신문스크랩, 사진 등 6건의 사료가 소장되어 있다. 사건의 발생과 진행과정은 신문스크랩 <인혁당사건관련 자료모음>(등록번호 : 492089)을 통해서 볼 수 있으며, <1차 인혁당 사건 판결문>(등록번호 : 534960)을 통해 박정권의 인혁당 사건 조작 시도가 여실히 무너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인혁당 사건 공판에서 피고자 도예종 등 13명 모습>(등록번호 : 709842)에서는 1차 인혁당 관련자의 면면을 볼 수 있다. 이 외에 1차 인혁당 사건의 시발이 되었던 한일회담 반대투쟁과 관련하여 145건의 사진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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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자가족협의회(구가협)
요약설명 : 구가협 활동을 하며 사용했던 각종 박물류가 소장되어있는데, ‘빅토리 숄’인 <어깨숄>(등록번호 : 057144)을 비롯해 3·1민주구국사건 때 사건 관련 구속자가족들이 시위용으로 제작해 법원까지 들고 간 “민주인사 석방하라” 등이 써있는 부채(등록번호 : 033704)와 남편 문익환 목사의 수형번호가 적힌 시위용 <보라색 원피스>(등록번호 : 33709)와 한복(등록번호 : 033711) 등 희귀자료들이 특기할 만하다. 이외에도 구가협이 제작 배포했던 각종 성명서(등록번호 : 480358외), 호소문(등록번호 : 479704외), 항의서(등록번호 : 479709) 등이 50여건 소장되어 있다. 양심범가족협의회 명의의 각종 성명서(등록번호 : 75395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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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요약설명 : 이 사건과 관련하여 약 90여건의 사료가 소장되어 있다. 중요사료로는 인혁당 사건의 진상을 처음으로 상세히 밝힌 성명서 <인혁당 사건 진상을 조사 발표하면서>(등록번호 : 108139)가 유감스럽게도 일부만 남아있다. <인혁당 조사 결과>(등록번호 : 476278)는 번역물로 문장은 매끄럽지 않으나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정보, 사건의 조작성, 시노트 신부의 증언, 사형과 시체탈취 과정, 외국신문 기사 등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중요사료다. 인혁당 관련자들의 모습은 『8월 인혁당 사건 공판에서 피고자 도예종 등 13명』(등록번호 : 709843)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인혁당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을위한대책위원회의...
사료 콘텐츠 2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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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바로 알자 - 「인혁당」 및 「민청학련」사건의 진상”
요약설명 : 00483338)’는 1975년 2월 인혁당재건위사건(제2차인혁당사건) 관련자로 사형당한 (故)이수병 씨의 아내 이정숙 씨가 관련자의 구명 활동과 재판부에 제출하기 위해서 만든 문서 사료이다.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에서 2005년에 사료관에 기증했으며 1975년 이정숙 씨가 생산했다. 다른 많은 국가폭력사건 관련 기록들과 마찬가지로 사료관이 소장하고 있는 인혁당재건위사건 기록들은 국가 기관에 인혁당사건으로 기소된 피해자의 가족 및 민주화인사, 시민사회가 맞서는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공소장과 정부발간물에 담긴 정부의 주장 인혁당사건 피의자들은 중앙정보부(중정)가 주도한 수사 과정에서 전기고문, 물고문 등 각종 고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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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사건은 계속되고 있다
요약설명 : 등 장기 형량을 선고한 사건이다. 가족들의 면회는 물론 변호사들의 접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형당한 사람들의 시신을 유족에게 인계하지도 못할 정도의 고문이 행해졌으며, 가족들 역시 수사기관에 끌려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다. 가족들은 직장에서 쫓겨났으며, 아이들은 동네에서 빨갱이의 자식이라고 해코지를 당해야 했다. 인혁당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폭로한 선교사 조지 오글 목사와 제임스 시노트 신부는 추방을 당했으며,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되었다 풀려난 김지하 시인은 감옥에서 인혁당사건으로 붙잡힌 이들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과 보고 들었던 것을 <동아일보>에 <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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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협 활동을 기억하다
요약설명 : 민청학련, 인혁당재건위사건으로 인한 구속자 수 증가와 목요기도회 등의 영향으로 설립되었다. 구가협은 이어 한국양심범가족협의회로 재편되었는데, 1985년 미문화원 농성 사건, 구로동맹파업, 민청련 사건과 관련하여 비슷한 시기 각기 투쟁하던 가족들이 서로 격려하고 뭉치게 되었고, 가족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할 통합조직으로서 민가협이 설립되었다. 1985년 민가협 출범 이후 70년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와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등 종교 관련 단체 중심이었던 인권운동이 확장되었다. 민가협은 인권변호사 분배 선임, 옥바라지 등 구속된 가족을 지지하는 활동에서, 가족과 얽혀있는 사건을 비롯해 구치소와 교도소...
구술 컬렉션 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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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모임(Monday Night Group)
면담자 : 진영종
일자/장소: 2003. 9. 22./아카데미하우스
요약설명 : 발행, 3.1사건, 구속자가족협의회 활동(빅토리 숄 등), 민청학련 사건(구속학생 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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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춘회
면담자 : 김선출
일자/장소: 2002. 10. 16./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민청학련 사건과 목요기도회, 인혁당 구속자 사형과 종교계 구명 계획, 민주동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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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섭
면담자 : 이병호
일자/장소: 2022.8.31. / 민주언론시민연합
요약설명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계엄당국의 언론 통제 아래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보도하지...
일지사료 7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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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종·김정강학생데모 배후로 수배
일자 : 1964.7.6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혐의로 수배되자 도주, 김정강의 상부선으로 그를 배후에서 조종했다.『경향신문』 1964.7.7 석3면불꽃회 사건1964년 7월 6일 정부는 “학생 데모를 공산 세력이 배후에서 조종한 증거 문건을 압수하고, 도예종(당시 41세, 1975년 2차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과 김정강(서울대 정치학과 3년)을 국가보안법 위반 및 내란 소요 등의 혐의로 각각 현상금 10만 원씩 전국에 수배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7월 18일 내무부장관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집결체인 불꽃회가 학생 데모를 배후에서 조종했다”며 김정강과 김정남 등 30여 명의 이름을 계보도와 함께 발표했다. ‘불꽃회 사건’이 터진 것은 김정강이 조직 구상을 하면서 메모해 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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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지령 받고 국가변란음모 지하조직” 중앙정보부, ‘인민혁명당’ 41명 구속
일자 : 1964.8.14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들이 서클을 구성한 적이 있었음은 인정할 수 있지만, 북괴에 동조하는 인혁당 강령 심의에 참여한 사실이 없으며, 그 강령 내용을 알았다는 점을 인정할 수도 없고, 그 밖에 북괴에 동조한 사실 또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무죄 이유였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발표한 어마어마한 국가변란사건은 용두사미로 끝을 맺었다.검찰이 제기한 항소심에서는 1심판결을 모두 파기하고 13명의 피고 전원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했는데, 대법원에서도 상고 기각판결을 내려 항소심 형량이 그대로 확정되었다.(이상우, 「민족일보·인혁당 사건의 전말」, 『신동아』, 1985년 6월호, 336쪽) 제1차 인혁당 사건은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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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검, 인혁당 사건 관련자 구속기소
일자 : 1964.9.5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5일 상오, 서울지검 공안부는 앞서 중앙정보부로부터 구속 송치된 인민혁명당사건 관련자 47명중 도예종 등 26명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나머지 21명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또는 불기소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동아일보』 1964.9.5 석7면, 『경향신문』 1964.9.5 석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