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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동시대 풍경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활력에 넘쳐났다. 그 동안 일제의 탄압에 숨 죽이며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투옥되었던 많은 인사들이 풀려나고 독립운동을 위해 해외로 나갔던 인재들이 돌아오고, 징용에 끌려갔던 국민들이 돌아왔다.
해방 직후에는 좌우익 단체들을 중심으로 노선투쟁이 활발했다. 자신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대립과 반목을 하면서 경쟁했다.
여성운동과 문화운동, 노동운동도 더불어 활기를 띠었다.
남과 북에 별개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데올로기 대립이 격화되고 북의 주민이 월남하고, 남의 주민이 월북하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그리고 반공을 국시로 내건 이승만 정부에서는 각종 공안사건이 정국을 휩쓸게 된다. 국회 프락치 사건, 진보당 사건, 김구 암살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테러사건, 보도연맹사건이 이 시기를 휩쓴다.
그리고 친일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반민특위가 이승만 정권의 조직적인 방해와 테러로 무위로 돌아간 것은 우리 역사상 가장 아픈 대목 가운데 하나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친일 정치인들에 의해 무산된 것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다시 경제 재건이 시도된다. 일제의 가혹한 수탈로 피폐해지고, 6.25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황무지에 하나둘 산업시설이 세워지고 재건을 위한 몸부림이 시작된다.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유무상 원조를 밑천으로 공장을 짓고 학교를 짓고, 철도를 건설했다.
농민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보릿고개를 극복하기 위해 황무지를 개간하며 민둥산에 나무를 심고, 누에를 치는 등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적산불하나 농지개혁, 원조 배분 과정에 부정이 개입하여 관료와 특권층의 배를 불리기에 바빴다. 정권을 연장하는 데만 눈이 먼 이승만 정권은 민심으로부터 버림받고 결국 대통령이 하야하여 해외로 쫓겨가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어려운 속에서도 우리 민중은 위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