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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노동자대투쟁
6월민주항쟁의 결과 6·29선언이 발표되었고, 이를 통해 직선제 개헌은 관철되었다. 하지만 기층 민중들의 요구는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노동자들의 생존권 확보 및 조직 결성 움직임이 일어났다.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은 노동조합 불모지대였던 현대그룹에서 먼저 일어났다. 7월 5일 현대엔진 노동자들이 노조 결성에 성공한 데 이어, 7월 16일에는‘현대 미포조선노동조합 결성 신고서류 탈취사건’이 발생하였다.
현대가 전 국민적인 지탄을 받는 가운데 파업투쟁은 독점 대기업의 사업장을 중심으로 본격화되었다. 7월 하순 영남권으로 확산된 투쟁은 (주)통일을 중심으로 마산·창원의 대공장을 휩쓸면서, 8월 17·18일 3만여 명이 참여한 울산 현대그룹노조연합의 가두시위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이후 부산과 거제 등지로 확산된 파업투쟁은 옥포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가두시위 과정에서 8월 22일 이석규가 직격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으로 발전하였다.‘이석규 열사 민주국민장’은 파업투쟁이 수도권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투쟁은 수도권의 중소기업·비제조업 등으로 확산되어 갔다.
하지만 8월 11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의‘폭력·파괴·불법 행동 비난’과‘공권력 개입 요청’을 계기로 정부의 물리적 개입과 이데올로기 공세가 강화되면서, 투쟁의 파고는 9월부터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조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소강상태로 빠져든 8월 말부터 운수·광산·사무·판매·서비스·기술직 등 비제조업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9월 이후 계속되었다.
7·8월노동자대투쟁을 통해 많은 노동조합이 새로이 조직되어 1987년 12월 말 현재 노동조합수 4,103개(1986년 2,675개), 조합원수 1,267,457명(1986년 1,035,890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1987년의 노동쟁의 3,749건 중 3,341건이 7월과 9월 사이에 전개되었다. 하루평균 발생건수가 44건으로 1986년의 0.76건의 58배가 증가하였다. 그리고 노동자대투쟁 기간에 발생한 쟁의 중 76%가 중소기업에서 일어났으며, 비합법투쟁이 94.1%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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