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5,95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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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농성에 돌입하며
등록번호 : 00887682
날짜 : 1987.12.1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농성중인 동료들을 적극 지지하며, 가족들에게까지 폭행을 자행한 삼성그룹의 살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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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농성을 해야하나!
등록번호 : 00852872
날짜 : 1988.06.0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청주 택시운전기사들의 임금협정이 회사에게만 유리한 악조건으로 체결되어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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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구치소내 교무과 농성 참가자 폭행사건진술내역]
등록번호 : 00062834
날짜 : 1990.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경혜
요약설명 : 교무과 농성참가자 명단, 폭행·고문사례집 등.
사진사료 2,48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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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민주화 농성 지원단 모습-한남대 농성지원단]
등록번호 : 00432470
날짜 : 1993.06.2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김미화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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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건, 한백렬의 사회안전법 철폐 요구 단식농성]
등록번호 : 00833761
날짜 : 1989.06.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겨레신문사
요약설명 : 2월22일 명동성당 입구에서 사회안전법 철폐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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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에 구속된 홍성담 등의 석방 요구 농성을 벌이는 사진]
등록번호 : 00833897
날짜 : 1989.08.1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겨레신문사
요약설명 : 요구하며 서울 인사동의 민족미술협의회(민미협) 사무실에서 사흘째 농성을 벌이고...
영상사료 6건
더 보기박물사료 6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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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점거농성사건
요약설명 : 검색되었다. 두장의 A4 용지에 타이핑한 민주화투쟁 전국학생연합의 <민정당 중앙정치 연수원 점거 농성 학우들의 20개 요구조항>(등록번호 : 084622)은 당시 점거 학생들의 주장을 살려볼 수 있는 사료이다. 이에 따르면 군사독재정권의 퇴진과 군사파쇼 헌법의 즉각 철폐 외에 광주원흉 5적(전두환, 노태우, 박준병, 권정달, 위컴)의 즉각 처단, 민중이 주체되는 통일논의 보장, 매판독점 자본 해체, 무분별한 외채도입 중지,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일해산업 등 전두환정권 친정세력의 권력형 부조리 공개 및 책임자 처단, 언론기본법과 보도지침 등 언론에 대한 통제 철폐와 그 온상인 KBS 해체 등 사회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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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문화원점거농성사건
요약설명 : : 211171), 미문화원 농성자 73명 일동 명의의 성명서 <백만학도에게 드리는 글-미문화원 농성을 풀며> (등록번호 : 576299) 등이 있으며, 장기욱, 허경만, 조승형, 이택돈, 박한상, 신기하, 목요상 등 미문화원 사건 담당 변호인단의 <문화원 사건으로 구속된 학생들과 미국 대사와의 면담 협조 요청[수신:서울지방검찰청검사장, 발신:미문화원 사건 담당 변호인단]> (등록번호: 51467), 미문화원 사건 관련 함운경, 이정훈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문 <대법원 제2부 판결> (등록번호 : 51480)등이 소장되어 있다. 주요 사진사료로는 경향신문사가 생산한 <창문을 열고 요구사항을 읽고 있는 전학련 소속의 시위 대학생> (등록번호: 716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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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농성사건
요약설명 : ‘국민평화대행진’ 33건‘, 4.13조치’와 관련하여 84건, ‘6월항쟁’과 관련하여 137건, ‘국민운동본부’와 관련하여 342건, ‘6.10국민대회’ 15건, ‘6.29선언’ 14건이 검색되었다. 4.13호헌조치와 관련하여 김대중의 성명서[정부는 4.13조치를 철회하고 평화적 집회의 봉쇄나 최루탄 발사등 일체의 폭력적 탄압행위를 지양할 것] (등록번호 : 00855815), 6월항쟁과 관련한 성명서 모음(등록번호 : 429721), 박용수 선생이 기증한 사진사료 <상공회의소 국기하강식 애국가 방송을 신호로 시작된 6월항쟁>(등록번호: 701102)가 다수 소장되어 있으며, 국민운동본부의 각종 성명서(등록번호 : 151233 외)와 <조직실태와 문제점,...
사료 콘텐츠 5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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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명동성당에 모인 시민들의 마음 - 명동성당 농성 지지글 필사본
요약설명 : ‘명동성당 농성 지지글 필사본(사료등록번호 00902878)’은 1987년 6월 당시 경향신문사 기자로 근무하던 이대근 씨가 명동성당 시위를 취재하면서 시민들이 작성한 응원 메시지를 옮겨 적은 문서 사료다. 2014년 이대근 씨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에 기증했다. 1987년 6월 명동성당 농성 당시, 성당 앞에는 민주화를 향한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하루라도 더 버틸 수 있도록 시위대를 위한 물품이나 성금을 모금하는 테이블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시민의 벽’이라는 이름으로 시민 누구나 응원의 글을 적을 수 있는 종이가 크게 붙어 있었다. “용기 없음을 자책하며 여러분의 행동을 지지합니다.”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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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농성투쟁과 결혼식
요약설명 : 하자 몸으로 막았다. 6월 15일 농성은 평화적으로 끝났다. 명동성당 농성투쟁은 6.10민주항쟁을 확대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명동성당 농성투쟁 나흘째 되는 날, 6월 13일 토요일 명동성당 본당에서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결혼식이 시작되자 신랑, 신부와 하객들이 성당으로 들어오면서 하객들도 자연스럽게 집회에 동참했다. 시위대는 박수와 함성으로 신랑, 신부를 축하해 주었다. 이날 명동성당에서 5쌍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1쌍만 종로성당으로 장소를 옮겨 예식을 치렀고, 나머지 4쌍의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이를 계기로 봉쇄되어 있던 성당의 시민 출입이 자유로워졌다. 이벤트 참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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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농성의 재미있는 기록
요약설명 : 된 사건으로, 32985호 사료는 명동성당 내외부의 농성투쟁 현황, 부상자 현황, 지원물품 현황 등을 정리한 상황일지, 명동성당에 반입된 유인물, 각 대학 및 시내 상황, 시위 상황에 대한 보도 내용 정리, 시민들의 지지 발언 소개 등 74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성 경위와 내용 뜻밖의 농성투쟁이 시작되자, 서울 명동성당 청년단체가 사제관 양권식 신부 방에 상황실을 설치하고, 신학생 유경촌(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등이 가톨릭 서울대교구 용지에 작성한 상황일지는 시간, 제목(또는 송화자), 내용, 비고로 나누어 작성되어 있으며 1987년 6월 10일 오후 4시 성당 마당에서 시작된 상계동 철거민 출정식과 오후 5시 서울시내...
구술 컬렉션 7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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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갑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일자/장소: 2019. 9. 27/전태일기념관 회의실
요약설명 : 농성에 들어가는 하루 전 과정 출생과 성장, 서울로 올라오게 된 배경과 서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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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우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일자/장소: 2019. 8. 27/민주인권기념관 회의실
요약설명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남화전자노조 분회장 활동 중 노동계 정화조치 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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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욱
면담자 : 윤호우
일자/장소: 2020.9.21. / 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민정당사 농성과 미 문화원 농성에 인원 동원을 맡음, 대학 중 성균관대가 가장 많은...
일지사료 93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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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학원의 자유 외치며 시위
일자 : 1960.2.28
분류 : 시위 상황 > 대구
요약설명 : 3시부터 농성에 돌입했다고 기술했다(안동일·홍기범 공저, 68쪽). 이들은“학생인권을옹호하라”,“ 도지사나학교관계사회책임자는현사태를해명하라”“, 여학생등검거한학생들을빨리석방하라”는구호를외치며농성하였다. 경북사대부고 학생들은 사복경찰과 교직원들, 학부모들에 의해 운동장까지 끌려나왔으나 완전히 어두워진 오후 8시 경 200여 명이 교문을 빠져나와 삼덕우체국 앞 로터리와 법원 앞 통로를 거쳐 대구매일신문사 앞까지 달려왔다.300명이 학교를 빠져나왔다는 주장도 있다(조화영 편, 19쪽). 대구매일신문사 앞에서 학생들은“부고(附高)는 비겁하지 않다.”,“ 학원은 신성하다, 정치는 간섭치 말라”등의 고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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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고등학교 학생 1천여 명, 학원의 자유 외치며 시위
일자 : 1960.3.8
분류 : 시위 상황 > 대전
요약설명 : 교내 농구장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며 연행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날 학교에 강제 수용된 학생들은『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학원의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는 뜻에서 시위를 한 것이요 정치적인 의도는 추호도 없다. 더구나 선거운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경찰관들은 우리들을 총대로 두들겨서 혹은 머리가 터지고 혹은 팔이 부러지고 어떤 학생은 허리를 다쳤다”며 울분을 토로하였다. 시위 중에 자유당 선전차는 학생 시위 중지를 호소하며 민주당이 또 다시 학생들을 선동했다고 비난하면서 대전 시내를 돌아다녔다.『한국일보』1960. 3. 9 조3면 시위가 모두 진압된 뒤에도 대전 시내 전 경찰은 삼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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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민주당원 피살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
일자 : 1960.3.10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요약설명 : 집합하여 농성을 하였으며, 6명의 대표는 경찰국장에게 범인을 체포하지 못한 이유와 민주당 운동원들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라고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또한 오후에는 민주당원 100여 명이 전남 경찰국장을 방문하고 범인 체포 및 여수 경찰서장의 즉각 파면을 강력히 요청하였다. 민주당 중앙당부는 10일 오전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최인규내무부장관에게 항의하는 동시에 배후 조종자를 즉각 체포하라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또한 자유당 정부는 공포와 암흑천지를 빚어낸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고 하였다. 민주당은 사건의 전모를 발표하는 동시에 민주당 중앙당사 앞에 “이러한 천인공노의 사실이 일어났으니 우리 민주당은 국민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