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60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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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문화원사건재판에 관련한 검찰,사법부의 현정권 시녀화를개탄한다
등록번호 : 00051747
날짜 : 1985.10.0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춘옥
요약설명 : 미문화원사건재판에 관련한검찰,사법부의현정권시녀화를 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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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문화원구속학생관련 호소문]
등록번호 : 00051752
날짜 : 1985.1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춘옥
요약설명 : 미문화원 구속학생 관련 변호인단 구성해 학생들을 변술해 달라고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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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문화원점거농성사건 관련 구속학생들의 학부모들이 한국天主敎正義平和委員會에게 도움을 요...
등록번호 : 00051773
날짜 : 1985.1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춘옥
요약설명 : 미문화원점거농성사건 관련 구속학생들의 학부모들이 한국천주교 정의 평화위원회에게...
사진사료 31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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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물 터진후 미문화원 앞 사진]
등록번호 : 00834184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겨레신문사
요약설명 : 폭발물 터진후 경계 강화된 21일 오후 미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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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관련 사진들
등록번호 : 00711483
날짜 : 1982.04.02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과 관련된 사진들을 신문기자가 편집한 사진 모음: 사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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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시위 이후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던 미문화원 도서실이 재개방한 모습
등록번호 : 00716339
날짜 : 1985.06.17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서울미문화원 도서실이 17일부터 다시공개됐다. 미문화원 측은 그동안 2층 도서실...
영상사료 2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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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요약설명 : 총 63 건 , ‘문부식’ 조건으로 총 40 건, ‘최기식’ 조건으로 총 68 건이 검색되었다. 김현장 외 15명에 대한 공소장(등록번호 : 112095), 김현장, 문부식의 최후진술(등록번호 : 523063, 483473), 김현장의 항소이유서(등록번호 : 482979 )문부식의 항소이유서(등록번호 : 482977 )와 탄원서(등록번호 : 482984), 최기식 신부의 양심선언 (등록번호 : 207833 ), 홍성우 변호사의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 변론내용>(등록번호 : 482965), 최기식 신부의 강론 <강론-부산 미문화원 사건과 우리의 나아갈 길>(등록번호: 484128 ), <최기식신부사건 공판에서의 함세웅 신부 증언>(등록번호:100946 ) 등 사건전체를 이해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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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민투사건
요약설명 : ‘삼민투’ 조건으로 총 30건, ‘삼민투위’ 조건으로 17건,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투쟁위원회’ 조건으로 총 2건, ‘전국학생총연합’ 조건으로 관련 사료 총 71건, ‘전학련’ 조건으로 관련사료 총 45건, ‘허인회’ 조건 총 54건 중 관련사료 23건이 검색되었다. 서울지방검찰청 명의의 <[의견진술-삼민투위 관련] [수신:서울형사지방법원 합의 11부, 발신:서울지방검찰청]> (등록번호 : 51487), 민중민주운동탄압저지를위한공동대책회의 (민주화운동청년연합, 한국기독청년협의회, 전국학생총연합)의 <공동성명서 [군부독재 퇴진, 노동운동 탄압 중단, 전학련과 삼민투에 대한 탄압음모 중지, 양심수 석방, 신민당의 성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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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
요약설명 : ‘민변’ 조건으로 총 112 건이 검색되었다. 소장사료 중 민변이 생산한 <민변 6개월 회고>(등록번호: 430992)가 민변 창립 이후 최초의 문서다. 그에 의하면 6개월간 회원은 51명에서 59명으로 증가했고, 사무실을 임대하여 상근사무원을 두었으며, 상세한 재정상황도 알 수 있다. 대내적으로는 리영희, 윤소영 교수 등을 초빙해서 강연을 들었으며 매주 금요일 노동운동, 통일론 등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를 10여회 개최하여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박종철, 권인숙 손해배상 사건들과 국보법 위반 등 형사사건 20여 건을 변론하였고 양심수 공청회를 열기도 하면서 각종 성명발표, 조사활동, 연대활동도 활발하게 벌였음을 알 수 있다....
사료 콘텐츠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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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미문화원방화사건의 증언
요약설명 : 이 사건은 1982년 3월 18일 발생한 부산미문화원방화와 1985년 5월 23일 발생한 서울미문화원 점거농성 등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 정부는 1989년 6월 19일 국회 광주특위 질의서에 대한 답변서에서 광주에 투입된 한국군 어느 부대도 미국의 통제 하에 있지 않았으며, 특전사 부대가 광주에 배치되는 것을 몰랐고, 이들이 광주에서 전개한 행동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했으면, 우리가 미국에 책임을 묻기로 했다라고 발표해야 될 것 아니냐고 발표해야 될 것 아니요? 그걸 안 했거든. 글고 그날 저녁에, 그냥 불이 거기 옆에 공사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못 들어가고 윤종형 형이랑 나랑 지키고 있고.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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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협 활동을 기억하다
요약설명 : 이어 한국양심범가족협의회로 재편되었는데, 1985년 미문화원 농성 사건, 구로동맹파업, 민청련 사건과 관련하여 비슷한 시기 각기 투쟁하던 가족들이 서로 격려하고 뭉치게 되었고, 가족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할 통합조직으로서 민가협이 설립되었다. 1985년 민가협 출범 이후 70년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와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등 종교 관련 단체 중심이었던 인권운동이 확장되었다. 민가협은 인권변호사 분배 선임, 옥바라지 등 구속된 가족을 지지하는 활동에서, 가족과 얽혀있는 사건을 비롯해 구치소와 교도소 내 폭력, 장기수, 조작간첩사건, 고문철폐 등 인권 영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혀나갔다. 민가협은 용공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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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매운동
요약설명 : 제품 안사기, 프랑스 생수와 와인 안마시기, 프랑스 영화 안보기 등 불매운동을 벌였다. 환경운동단체들은 당시 고속전철 도입(떼제베) 계약도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제품 불매운동 - 부산미문화원 반환운동 부산미문화원은 1929년 지어져 식민지 수탈기구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 1949년부터 미국이 해외홍보처로, 부산미문화원으로 무상 사용했다. 부산미문화원은 광주항쟁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물었던 1982년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비롯하여 1980년대 반미운동의 상징적인 장소였다. 부산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반환운동을 벌여 1999년 부산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현재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사용되고...
구술 컬렉션 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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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면담자 : 이영재
일자/장소: 2021.9.13. / 서울시 종로구 4.9통일평화재단 사무실
요약설명 : 이주, 미문화원 점거농성 관련 아들의 수배와 민가협 활동, 장안평 안기부 대공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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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춘
면담자 : 이영재
일자/장소: 2021.8.20. / 경기도 일산시 EBS 이사장실
요약설명 : 과정, 미문화원 점거농성 학생들의 첫 재판과 해직된 사연, 동생 수감 후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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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욱
면담자 : 정용인
일자/장소: 2020.11.6. / 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깃발그룹과 반비판, 미문화원 점거농성, 삼민투와 MC-MT, CNP 논쟁, MC에서 NL의 ...
일지사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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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동국대학교 학생들 선두로 경무대 향해 전진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명은 을지로를 통과하여 미국대사관(현 서울시청 을지로 청사. 당시엔 미문화원, 또는 미공보원이라고도 하였음) 앞, 시청 앞을 거쳐 시위대가 포진하고 있는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하였다.『 동대시보』1960. 4. 30 1면 ; 동국대학교 학생자치위원회, 「동국 건아의 민주기록」, 이강현 편, 133-153쪽. 동국대학교 학생대표 11명은 4월 5일과 10일 모여 반정부 시위운동을 하기로 결의하고, 전교생이 참석하는 총장의 문화사 강의일인 4월 18일을 거사일로 정했으나 일정의 변경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다(동국대학교 학생자치위원회, 146-147쪽). 이들은 이미 이곳에 학생들이 많이 몰려있는 것을 보고 계속 전진, 세종로 거리를 북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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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정식 발족
일자 : 1974.9.23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제1 시국선언」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이 침해당할 때면 언제 어디서나 그의 편에 서서 그의 권리를 회복시켜주기 위하여 저항하고 투쟁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선언하였다. 이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은 민주화와 인권회복을 위한 현장에서 중요 고비마다 계속되었다. 특히 아무도 쉽게 나설 수 없었던 김지하 구명운동, 인혁당사건 진상조사와 구명운동,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의 고문치사사건 폭로, 김재규 사건, 5·18광주민중항쟁,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박종철 고문살인사건, 임수경 방북사건 등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은 거침없는 발언과 행동으로 민주화운동에 큰 기여를 하였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