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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1995년 4.19혁명 희생자 위령제

1992년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주화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사회의 민주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처럼 거리 시위와 최루탄의 매콤한 냄새는 많이 가셨지만 아직도 이 땅의 완전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많았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정신을 잊지 말고 되새겨야 할 이유가 아직 충분히 남아 있었다.
1995년 4월 19일 수유리의 국립4.19민주묘지는 겉으로는 평온을 되찾았지만 그 의미는 변함이 없었다.
당시 경찰의 무차별 총격으로 총상을 입은 정충식 선생은 아직도 병상에서 고통을 받고 있으며, 당시 총격으로 사망한 김태년 열사의 아버지 얼굴에 잡힌 주름에서 35년 동안 자식을 잃은 한을 안고 살아온 삶의 흔적이 보인다.
영혼부부를 맺은 영령들의 합장식이 거행되고 제를 올리고 있는 유족들은 저승에서나마 영령들의 행복을 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