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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 특위 청문회

국회 청문회는 1988년 13대 총선에 따른 여소야대 정국에서 도입됐다. 국회 주도권을 쥐게 된 야 3당은 민주화 열기를 업고 여당이 한사코 거부하던 청문회 도입을 밀어붙였다. 이로 인해 그 해 11월 5공 비리, 5․18 광주민주화, 언론통폐합 관련 3개 청문회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이 중 일해재단 설립 배경과 기금 모집과정을 추궁하기 위해 열린 국회 5공비리 조사특위의 인기가 단연 으뜸이었다.
5공 특위는 금기시됐던 최고위층의 권력 연장과 정치자금 모금행태, 이를 ‘송곳 질의’로 하나하나 벗겨내는 야당의원들, 청문회를 밤새워 지켜보며 응원하던 국민 등 ‘삼박자’가 어우러져 이에 대한 열기는 폭발적이었다. 1988년 12월 3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전직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증언대에 서게 하는 개가를 올렸다.
1988년 11월 7일 시민들이 국회에서 열린 5공비리 일해재단 청문회의 장세동 증언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12월 23일 국회 5공 특위와 광주특위의 간사 연석회의가 열려 최규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회 증언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같은 달 26일 5공특위와 광주특위의 연석회의 모습이 보인다. 1989년 2월 14일 허형구 법무부장관이 5공특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수사경과를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