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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군사쿠데타와 제3공화국

5.16 쿠데타로 최고권력기관으로 등장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모든 정당과 사회단체의 해산을 명령하고, 정치인들에 대해 대거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그 후 자신들이 공화당을 창당하여 63년 제5대 대선에 박정희를 후보로 내세워 3공화국이 출범한다. 그 직후에 치러진 국회의원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지형을 만든 뒤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한다. 그리고 67년에 치러진 대선에서 역시 야당의 윤보선 후보를 물리치고 두 번째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어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3선 개헌을 위한 의결정족수를 확보하기 위해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치른다. 그리고 날치기로 개헌안을 통과시킨 뒤 71년 대선에서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하여 야당인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세 번째 대통령에 당선된 뒤 10월유신을 단행하여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간접선거로 영구집권의 기틀을 마련한다.
반면 야당은 분열과 통합을 거듭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공화당과 맞선다. 정치활동규제로부터 풀려난 사람들이 해금되면서 63년에 구파가 윤보선을 중심으로 민정당을 창당하고 신파가 박순천을 중심으로 민주당을 창당하였으나 협상을 통해 윤보선이 단일 대통령후보로 출마하지만 박정희에게 패하고 만다.
그 후 한일회담 반대투쟁이 격화되자 65년 6월 14일 민중당으로 통합하여 공동대응을 하지만, 의견차이가 노출되며 강경입장을 취하는 윤보선 일파가 다시 탈당한다.
그리고 이후 다시 67년 제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신민당으로 통합되는 우여곡절을 거친다. 그리고 유신시대에는 유진산 총재의 온건노선으로 인해 사쿠라 논쟁에 휘말리며, 김영삼 총재가 다시 대여 강경투쟁을 벌였고, 이철승이 당 대표가 되면서 온건노선을 취하는 등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친다.
그 외에도 국민당, 정의당, 민주통일당 등이 출현하지만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