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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자유당 풍경

자유당은 철저히 이승만 개인을 위해 창당된 정당이다. 6.25전쟁 중이던 1951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승만은 정당을 조직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듬해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그리고 열흘 후 정당 창당에 대한 담화문을 발표한다. 8월 말에는 주중 대사로 있던 이범석을 귀국시켜 창당을 맡도록 조치한다. 이범석은 조선민족청년단(줄여서 ‘족청’이라고 함)이라는 전국적인 방대한 조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조직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대한국민회, 대한청년단, 대한노동조합총연맹, 농민조합총연맹, 대한부인회 등 5개 사회단체를 자유당에 편입시킨다. 그를 정치적 기반으로 하여 점차 이범석을 비롯한 당내 경쟁자들을 제거한 뒤, 영구집권을 획책하다, 4.19혁명 이후 명목상으로 존재하다 1961년 5월 23일, 모든 정당과 사회단체의 해산을 명령한 국가재건최고회의 포고 제6호로 해산되었다. 

1963년 9월 7일, 전 자유당 소속 민의원 및 참의원과 핵심 당간부 등이 구 자유당의 이념 계승을 표방하고 자유당을 재결성한다. 1966년 12월 16일 제4차 전당대의원대회에서 당헌을 개정하여 종래의 집단지도체제를 단일지도체제로 바꾸면서 당대표자의 직명도 당의장으로 바꾸고, 이재학()을 당의장으로 선출하였다. 장택상은 제5대 대통령선거에 임하여 대통령후보로 지명되었으나, 야당이 단일후보를 내야 한다는 이유로 출마를 포기하였다. 창당 이후 한번도 원내 진출을 하지 못하고 1970년 1월 24일 신민당사에서 양당 통합을 위한 합동회의를 열어 합당할 것을 결정함에 따라 신민당에 흡수,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