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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시인 고 채광석 민주문화인장

1975년 4월, 서울대 김상진씨가 할복자살하는 등 유신반대운동이 고조되자, 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하여 탄압의 강도를 높여갔다. 5월에 김상진 열사 추모시위가 벌어지자 사범대 시위책임을 맡았던 채광석은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체포되어 40여 일간 모진 고문을 당했는데 이때의 고문체험으로 〈애국가〉, 〈검은 장갑〉 등의 시를 썼다. 채광석 시인은 민중문화운동연합의 창립을 계기로 이후 타계할 때까지 문학운동을 비롯한 문화운동 전반에 걸쳐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으며,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문화예술분과위원장에 임명되면서 박노해 시인을 발굴하여 민중문학의 한 맥을 이루게 하기도 하였다.

채광석 시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실행위원,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1987년 7월 12일 교통사고로 사망하였으며, 장례는 민통련이 주관하고 '민족시인 고 채광석 민주문화인장 장례준비위원회'(위원장 백기완)가 주최하여 거행되었다. 

'민족시인 고 채광석 민주문화인장'은 7월 14일 오전 9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병원에서 성유보(민통련 사무처장)의 사회로 백기완 장례준비위원장의 개식사, 김정환의 약력보고, 이시영의 조시, 문익환(민통련 의장), 성내운(연세대 교수), 황석영(자유실천문인협의회), 심지연(친우), 박성규(후배)의 조사와 민중문화운동연합 노래패의 조가, 고은(호상)의 인사의 말 순서로 진행되었다. 장지는 팔당공원 묘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