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 - 1957년 12월호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반민특위 패망하던 날의 비극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반민특위가 패망하던 날의 비극

정부가 수립된지 얼마 안 되어 설치되었던 『반민특별조사위원회』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자못 컸었다. 그러나 당초에는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는 듯 하더니 나중에는 그 자취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이제 당시의 부위원장이었던 김상돈씨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자.

수를 쓰는 친일파

정부가 수립되자 국가와 민족의 기강을 살리기 위해 지극한 소수악질 친일파들을 일단 숙청하여야 된다는 것이 국민들의 공통된 여론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그리 조급하게 처리할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조사에 임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해괴한 것은 반민법에 저촉되고 있는 특수악질 자들 중에는 근신은 고사하고 오히려 자기들이 선수를 써서 1억원의 거액을 들여 『대지구락부』라는 것을 형성하고 기염을 토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는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전국적으로 조직망을 확대하는 동시에 정부 요직에 들어 앉으려고 획책을 하고 있었다. 제헌국회에서는 그들의 이러한 태도를 방관시 할리 만무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여론이 차츰 비등했다. 그리하여 그들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기 위하여 반민법을 논의하게 되었는데 그 때에 뜻하지 아니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그것은 무엇인고 하니 1948년 10월 중순경에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소위 『반공대회』였다.[시월 중순이 아니라 9월 23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반공구국총궐기 및 정권이양축하 국민대회'를 말하는 듯하다] 이 반공대회의 명목은 뚜렷했다. 국민들의 반공의식을 더욱 앙양시키자는 것이었다. 당시의 국무총리 이범석씨가 중심이 되었는데 정부에서는 수십대의 「트럭」을 대여했으며 상당히 많은 광목을 특배했다. 군중동원에 있어서도 경찰을 동원시켜 매호당 한사람씩 나오게 하였으니 대회는 여하간에 일대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 대회는 당시 국회에서 제정중이던 반민법을 방해키 위한 가장의 모임인 듯한 인상을 주었다. 어떠한 자들의 흉계였던지 대회가 진행되는 도중에 반민법 제정을 반대하는 내용의 각종 각색의 「삐라」가 수없이 대회장에 살포되었다. 그와 동시에 시내 도처에 망민법(亡民法) 제정을 반대한다는 벽보가 나붙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가증스러운 것은 반민법에 저촉되는 이종형[이종형- 일제 강점기 만주에서 일경의 촉탁으로 250여명의 애국지사를 검거해 17명을 사형당하게 한 악질 친일파]의 행동이었다. 그는 모처의 후원으로 대동신문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기화로 신문지상을 통하여 『신성한 의정단상에 망민법 제정을 주장하는 개새끼들이 있다. 김상돈, 곽상훈, 정준 등을 몰아내라』는 등의 내용으로 대서특필 욕설을 퍼붓는 것이었다. 이 大東新聞의 망동은 국회의원들을 격분케 하였다. 즉시로 공보처장 김동성씨를 국회에 불렀다. '신성한 법을 제정하는데 있어 이러한 망동을 한 그를 어떻게 할 것이며 그 신문을 그대로 둘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폐간시킬 용의가 있는가'라고 신랄하게 그 취할 바 조처를 추궁했다. 그리하였더니 김동성씨는 즉석에서 유감의 뜻을 표했으며 대동신문을 폐간시키었다.

정당을 이용한 친일파

반민법은 그 시초부터 갖은 방해를 당하면서도 민족의 끊임없는 지원하에 드디어 완성되었다. 계속해서 반민특위도 구성되었으나 또다시 새로운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다. 정부에서 비협조적인 행동으로 나오므로 행동착수에 2, 3개월이나 지연되었다. 첫째로 청사의 알선이 없었으며 예산은 계상되었으나 현금을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49년 1월에야 중앙청 안에 겨우 연락사무실을 두고 지필(紙筆)을 구걸하다 시피 하면서 사무를 개시하였다. 특위 위원장에는 김상덕 씨[김상덕-독립운동가. 대한민국임시정부 문화부장 겸 의정원 학무위원장·제헌국회의원 역임. 6·25 때 납북됨]부위원장에는 나였으며 재판장에 김병로씨 검사장에는 권승렬씨가 취임하였다. 반민자에 대한 조사는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드디어 발동하게 되었다. 제一차의 대상자는 주로 소위 거물급이었다. 박중양, 이종형, 노모[노덕술(盧德述)]등 무려 수십명에 달했다. 그들의 죄상은 어느 것 하나할 것 없이 용서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그 동기에 대해서 다소 참작할 사람도 있기는 하였으나 이종형 같은 자는 만주에서 우리 애국투사들을 무려 23명이나 살해한 악질적인 일제의 앞잡이였던 것이다. 이러한 정확한 사실은 자신이 스스로 자백하였기 때문에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특위 검사였던 곽상훈씨는 추상같은 논고문을 낭독한 뒤 그에게 사형을 구형했던 것이다. 본격적인 조사와 그에 병행한 공판은 차츰 본 궤도에 오를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사업을 수행하는 데에는 가지가지의 방해공작이 가로막고 있었다. 교묘한 최고악질적인 지능범이었던 해당자 중에는 금력으로 관력(官力)을 사며 심지어는 정치력(政治力)을 사서 저들의 안신책(安身策)을 도모하려고 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또한 당시의 우리 반민특위 자신도 사람이 하는 이상 실수가 있어 비난의 소리를 들을만한 일도 있기야 하였겠지만 이 거족적인 사업을 마땅히 이해 협조한 줄로 믿었던 우익정당에서 사실을 고의로 왜곡 악평하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반민특위를 혹평한 진의는 반민법 운영의 지연과 방해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 정당은 당시 국회위원이었으며 상공부 장관이던 임영신씨가[임영신-일제강점기 친일단체인 임전보국단 부인대 지도위원으로 활동] 당수인 여자국민당(女子國民黨)이었다. 일부악질 반민자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민족적 죄악을 반성은커녕 이와 같이 여자국민당에 교묘하게 접근하여 반민특위 사업을 모략중상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비록 반민특위에만 도전한 것이 아니라 전민족에게 대들었던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해할 수 없었던 고위층태도

반민특위에 대한 모략중상이 심해가더니 나중에는 고위층에서의 압력까지 받게 되었다. 또한 정부에서의 비협조적인 태도는 여전하였다. 반민법에 저촉되는 노모[노덕술]라는 자가 있었다. 이자는 과거 일제시 소위 고등경찰로 있으면서 수많은 애국투사들을 괴롭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민주경찰의 주요 간부로서 등용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 유명한 수도청의 『고문치사사건』으로 검찰에서 지명수배를 하였으나 노모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수도청 고문치사 사건-1948년 7월 수도경찰청 수사과장겸 관방장으로 재직한 노덕술이 피의자를 고문 치사케 한 후 시체를 인멸케 하고자 한강 어름구멍에 버리게 한 사건. 이 사건이 크게 문제가 되자 노덕술은 잠시 구속되었다가 도주하여 지명수배 중이었다] 그러나 반민특위에서는 그를 반민피의자로서 지명수배를 하였는데 수사를 개시한지 불과 수일만에 체포할 수가 있었다. 용산구 청파동 모 고위층 사택에 잠복하고 있다는 유력한 단서를 포착하고 급습하여 체포하게 되었는데 체포직전의 그의 주위환경을 목격하고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는 二명의 무장을 한 호위경관이 따라다녔으며 심지어는 「?」차 까지 대여받고 있었다. [노덕술은 수배 중에도 번호판을 단 경찰지프에 경호원까지 태우고 서울 시내를 활보했으며, 당시 내무장관 윤치영의 집과 외무장관 장택상의 집을 무상으로 출입했다. 1949년 1월 25일 노덕술은 효창동 동화백화점 사장 이두철의 집에서 검거되었다.] 이러한 특위의 거사에 당시의 국민들은 쾌재의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이때에 벌써 그러한 처사가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즈음이었다. 정부 고위층에서 반민특위 위원들을 만나자는 것이었다. 당초에 우리들 위원 십명은 다대한 흥미와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실지 대면하고 보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위층에서 하는 말이 노모는 유능한 기술자이니 석방시켜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자의 정의(定義)를 말했다. 기술자라면 「매캐닉」을 의미하는 것이고 문제의 노모는 악질적인 반민족 행동의 경험뿐인데 신생 대한민국에 그러한 경험의 기술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라고 대답했다. 동시에 이러한 자를 석방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며 과거 쓰라린 체험을 한 국민들이 용서치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위층은 그의 석방을 재차 요구하였다. 때의 특위 위원 金明東씨는 분연히 『그렇게 노모를 석방시킬 필요를 느낀다면 정식으로 국회에 석방동의 요청서를 내어주시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였더니 고위층은 화를 버럭 내면서 『맘대로 하라 … 나는 나대로 할터이니!』라고 말하며 일종의 선전포고를 내리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 요구에 순종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법이 있는 이상 염려없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응수하고 돌아왔다.

『선하심(先何心) 후하심(後何心)』

반민특위가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에 나에게 있어서는 전률을 느낄 음모를 하고 있는 사실이 백일하에 폭로되었다. 즉 당시 경찰간부로 있던 최모[당시 수도청 수사과장 최난수] 홍모[당시 수도청 사찰과 부과장 홍택희] 박모[전 중부경찰서장 박경림]등이 백민태라는 청년을 교사하여 나와 몇몇 특위 위원들을 암살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흉계가 꾸며져 가고 있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러나 그들이 하수인으로 지명했던 전기 백민태의 고백으로써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이다. 백민태는 현금 십만원과 수류탄과 권총을 입수하고 즉시 양심의 가책에 못이겼다고 말했다. 그는 자진 특위 사무실에 나타나 모든 것을 고백했다. 이는 소위 실력으로써 특위를 위협한 사건이었는데 고위층에서도 특위를 비난하였다. 그것은 반민해당자들을 고문 난타하였다고 노발대발 하면서 어찌 그러한 고문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대뜸 신문지상에 사실을 밝혔다. 『그것은 사실과 상반되는 말이다. 고문을 한 일은 전혀 없다. 백보를 양보해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일제시대에 그들의 주구로서 애국자들을 못살게 하던 그런 극소수의 악질분자들을 좀 고문 난타했기로서니 무엇이 그리 안됐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고위층은 소수 악질자를 위한 위정자이던가?』라고 논박하였다. 최근에 이르러 행정부의 고위층은 친일파를 용허해서는 아니된다고 강조를 하고 있으니 『先何心 後何心』인고 …

특경대의 해산

반민특위에 드디어 최악의 경우가 다가왔다. 반민특위에는 특경대라는 것이 있었는데 내무장관의 동의를 얻어 금명간에 정식 발령을 내리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돌연 이 특경대에 해산명령이 내렸던 것이다. 그 당시의 중부경찰 서장 윤모씨는(현 변호사)[윤기병] 무장한 수십명의 경찰관을 대동하고 을지로 입구 반민특위본부(현 저축은행)[지금 명동의 국민은행 본점 자리]에 나타났다. 그것은 일종의 습격태세와도 흡사했다. 그리하여 민족의 기강을 세우려고 들어온 의용병과 같은 특경대 청년 20명은 피체 구금되었다. 그들은 시내 각 경찰서에 분산 유치되었다. 왜 그들을 체포하였을까? 또한 무슨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그들을 고문 난타하였는지? 심지어는 전기고문까지 하였는데 어찌나도 지독했던지 바지에 똥을 싼 청년이 있었으니 그 정상은 과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거의 전원이 서대문에 있는 적십자병원에 입원 치료를 시키지 않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 후 적십자병원에서는 입원료를 13만 5천6백원을 반민특위에 청구하여 왔었다. 그때 나는 반민특위는 피해자요 가해자는 경찰이니 내무부장관 김효석한테서 받으라고 돌려보냈다. 여기에 당시의 반민특위의 형편을 여실히 말해주는 한가지의 실례가 있다. 어떻게 질서와 법의 존엄성을 잘 지킨 행정부의 처사였던지 1개 순경이 자기의 몇 층의 직속상관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검찰총장 권승렬씨의 가슴에다 「칼빈」총구를 겨누면서 그의 호신용 권총을 탈취하였던 것이다.

위정당국자는 맹성하라

사태가 이쯤 되었으니 어찌 하는 수가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불법성을 폭로하면서 우리는 총사퇴를 결의하였던 것이다. 그후 국회에서는 반민특위 위원들을 보선하여 업무를 계속은 시켰으나 얼마 안가서 유야무야로 폐지케 되었다. 그 결과 살아난 것은 악질 친일분자들이고 울분을 풀지 못한 것은 온 민족이었다. 나는 지금도 눈앞에 훤하다. 반민자의 수사가 한창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나의아들』『나의 남편』『나의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통곡하면서 호소하던 국민들의 모습이 … 아침에 출근하면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 × 오늘날 정치가 어지로워진 것도 그 당시에 반민자들을 철저히 처단 못한 데에도 원인이 있었다. 고위층이 방기를 뀌어도 『각하 시원하시겠읍니다.』라고 말한 위인, 8ㆍ15전 이력서를 국민앞에 내놓지 못하는 위인을 또 국민의 최대의 권리인 선거권을 유린한 반민족 겸 반민주자가 일국의 수석장관의 자리에 앉은바도 있었다.[이승만대통령이 낚시를 하러 갔을 때 방귀를 뀌자 옆에 있던 경기도지사 이익흥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1956년 8월 1일 이익흥이 내무부장관으로 재직 시 국회에서 유옥우 의원이 이익흥장관 앞에서 이 사실을 공개해 세간에 유명해졌다.] 이것은 너무나도 중대한 실책이었다. 상전에는 아부하고 국민에게는 권세를 부리는 것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결과적으로 『귀하신 몸이 어찌 혼자 오셨나이까』 등의 새로운 유행어가 발생하겠금 되었다. [이승만의 양자이자 이기붕의 아들인 이강석을 흉내낸 '가짜 이강석'이 지방을 돌 때 어느 도지사가 했다는 말이다] 이제라도 늦지는 않았다. 위정당국자는 가장 민주적이요 새로운 정치를 하여 과거와 현재의 모든 죄과를 국민앞에 진사하며 국리민복을 도모하여 주기를 충심으로 비는 바이다. (필자 민의원의원)

『종합실화잡지 - 眞相』12월호 28~31쪽에 실린 글
(1957년 12월 1일, 신문의 신문사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