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보는 유신반대운동

유신과 반유신
1972~79 유신반대운동유신과 반유신

박정희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원하는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중대한 결심을 한다"며 유신을 선포했다. 박대통령은 평화통일을 통한 안정, 경제적 성장을 통한 번영을 위해서는 과거의 비능률적인 정치제도를 버리고 우리에게 적합한 새로운 정치제도가 필요하다며 유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대통령은 이것을 '한국적 민주주의' 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박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유신은 곧 저항에 부딪쳤다. 많은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은 유신이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위한 독재체제라며 반대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유신이 발표된 직후부터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죽기 전까지 대학생, 지식인, 노동자, 농민들의 끊임없는 저항이 계속되었다.

유신과 반유신.

서로 다른 움직임의 중심에는 박정희와 장준하라는 두 인물이 있다.



  • 사진 1. 박정희 대통령 [사진원본보기]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나라 5, 6, 7, 8, 9대 대통령으로 무려 18년간 권력을 잡았다. 박대통령은 만주군관학교,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일반 관동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해방 후 한국으로 귀국했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군대로 복귀하여 직업군인의 길을 걸어왔다.



  • 사진 2. 5∙16 군사쿠데타 사진 [사진원본보기]

    1961년 5월 16일, 당시 육군 소장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를 통해 권력의 핵심에 서게 된다. 박정희는 4∙19혁명 이후 쏟아져 나온 다양한 사회의 요구를 '혼란'으로 보고 민족을 위해 '군사혁명'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 사진 3. 경제건설 현장을 돌아보는 박정희
    [사진원본보기]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대한민국의 경제자립과 경제성장을 목표료 1962년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하였다. 당시 경제정책은 경공업 중심의 수출주도형 선성장 후분배 정책으로 노동자의 값싼 노동력과 농촌경제의 희생을 요구했다.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5개년 계획의 성과에 힘입어 박정희는 5, 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사진 4. 7대 대통령 선거 유세장면 [사진원본보기]

    박정희 대통령은 1969년 삼선개헌을 강행하여 장기집권의 토대를 마련하고 1971년에 7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다시 유신헌법을 선포하여 직선제를 폐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들이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도록 했다. 그 결과 99.9% 이상의 찬성으로 8, 9대 대통령선거에 당선되었다.



  • 사진 5. 박정희 대통령의 빈소(박근혜)
    [사진원본보기]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삼선개선, 10월유신 등으로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유신 지지! 박정희 대통령

10월 유신을 통해 잘못된 것, 낡은 것, 부조리한 것들을 과감히 없애 버리고 과거의 여러 가지 비능률 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은 추방해야겠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국력을 키우고, 유사시에 이를 집중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국력신장의 제1,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 건설을 통한 국력배양입니다.

- 1972. 10. 31 석유화학공장 합동준공식 연설문 중에서


  • 사진1. 공판장에 들어가는 장준하 [사진원본보기]

    함석헌과 함께 공판장에 들어가는 장준하(왼쪽)의 모습이다. 재야의 대통령으로 불렸던 장준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하다 해방 이후 김구의 비서 역할을 수행했다.



  • 사진2. 막사이사이상 수상
    자료제공 : (사)장준하기념사업회

    장준하는 1953년 <사상계>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의 문제점을 비판해왔다. 그 공로로 1962년 막사이사이상 언론 부분의 상을 받았다.



  • 사진3. 공판받고 있는 장준하 [사진원본보기]

    박정희 집권 이후에는 한일협정과 베트남 전쟁 파병을 정면으로 비판하여 몇 차례 구속되기도 했다. 1970년대는 <사상계>를 통해 유신체제를 비판하는데 앞장섰다.



  • 사진4.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 관련사진
    자료제공 : (사)장준하기념사업회

    장준하는 <민주회복을 위한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였다. 유신헌법을 철폐하라는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는 장준하의 모습이다.



  • 사진5. 약사봉에 새겨진 기념비 [사진원본보기]

    1975년 장준하는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에서 의문의 추락사로 사망하였다. 이곳에 세워진 기념비의 한 구절. "여기 이 말없는 골짝은 빼앗긴 민주주의의 정치, 고루 잘사는 사회, 민족의 자주 평화, 통일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장준하 선생이 원통히 숨진 곳."

유신 반대! 장준하

10월 17일 유신으로 ... 국가의 헌법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대통령 박정희는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 고, 헌법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모든 권력의 주체인 국민을 강압했다. ... 유신헌법을 제정하여 일인 독재 체제만 확립하였다. ... 뒤늦게나마 통일의 의지와 스스로의 자유생존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신을 폐지 해야 한다.

- <씨알의 소리> 박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중에서


질문박정의 대통령과 장준하 선생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래 빈칸을 채워보자.
해답

박정희 유신경제건설(경제성장)과 국력신장번영과 평화통일

장준하 유신헌법질서 및 민중의 자유의지 파괴독재와 평화통일 위협



질문유신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과 장준하 선생의 주장이 어떻게 다른지, 다른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이와 같이 상반된 평가를 받는 유신헌법은 과연 어떤 것일까?

다 함께 1972년 제정된 유신헌법을 살펴보자.

질문유신헌법과 오늘날의 헌법을 비교해보고 아래 표의 빈칸을 채워보자.
  • 유신헌법
  • 제39조

    ①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토론 없이 무기명 투표로 선거한다.

  • 제40조

    ① 통일주체국민회의는 국회의원 정수의 1/3에 해당하는 수의 국회의원을 선거한다.

  • 제47조

    대통령의 임기는 6년으로 한다.

  • 제53조

    대통령은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에는 내정·외교·국방·경제·재정·사법 등 국정 전반에 결쳐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

  • 제54조

    대통령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 제59조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

  • 현재 헌법
  • 제67조

    ①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 제70조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

  • 제76조

    대통령은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

유신헌법 헌재헌법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통령 및 국회의원 1/3 선거 관련 항목 없음
대통령 선거방법 무기명 비밀투표, 간접선거 직접선거
대통령 임기 6년, 중임 제한 없음 5년, 중임 금지
대통령의 권한 긴급조치 긴급 명령
② 비상계엄
국회해산


질문두 헌법을 비교한 결과 현재 헌법에 비해 유신헌법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을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