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헌법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강력했다.
특히 53조 "긴급조치"는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시킬 수 있었다. 헌법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혹은 안보상의 큰 위기에만 긴급조치를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는 유신반대의 목소리가 커갈 때마다 긴급조치를 발표해 사람들의 입을 막았다.
긴급조치는 1974년 시작해 1979년까지 모두 아홉 차례 발표되었다. 특히 긴급조치 9호는 긴급조치의 결정판으로 이제 사람들은 말 한마디 문장 한 구절로도 구속될 수 있었다.
1975년 11월 농사를 짓던 A가 동네를 걸어가면서 인근 주민들이 있는 자리에서 "박정희 정치는 독재정치다. 박정희는 나쁜 놈이다. 죽일 놈이다. 저 혼자 해먹으려고 한다"고 큰 소리로 말해, 징역·자격정지 3년을 선고 받았다.
1975년 7월 B가 TV시청 중, "현재 박정희와 김종필이 사회 부조리를 제거한다고 하지만 자신들이 부조리한데 부하직원들한테 백날 부르짖어본들 말빨이 설 리가 있는가. 다 똑같다"고 말하고 "전쟁이 나면 북괴는 해상을 통해 부산으로 침투하고 땅굴을 통하여 대구로 쳐들어와 인민군 정규군과 공군이 서울의 큰 건물을 파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여 징역·자격정지 2년에 처해졌다.
명예훼손, 혹은 위법사항이 아닐 수도 있다.
1항. 가
1. 다음의 각호의 행위를 금한다.
가.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 나. 집회, 시위 또는 신문, 방송, 통신 등 공중 전파 수단이나 문서, 도서, 음반의 표현물에 의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청원, 선동박정희 정권은 <긴급조치> 이외에도 유신에 반대하는 대학생과 지식인 종교인들을 함께 묶어 각종 사건을 허위 조작하였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은 25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 수사 상황을 중간발표, 이날 현재 240여명이 이 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이들이 준비하고 있던 각종 유인물 10여만 장을 비롯한 증거자료를 수집했다고 밝혔다. 신 부장은 이날 민청학련의 배후에는 과거 공산계 불법단체인 인혁당 조직과 재일조총련계 및 일본공산당, 국내좌파 혁신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발표하고, 특히 학생 주모자들은 북괴의 통일전선 형성 공작과 동일한 4단계 혁명을 통해 이른바 노동자, 농민에 의한 정권수립을 목표로 그 과도적 통치기구로 민족지도부의 결성도 계획했다고 말했다.
신 부장은 이들이 획책한 4단계 혁명은 ① 유신체제를 비민주 독재로 단정, 에너지 파동에 따른 경제사정을 정부 실책으로 과장, 반정부 세력을 규합하며, ② 4월 3일을 기해 전국 주요 대학이 일제히 봉기, 청와대, 중앙청 등을 점거하게 하고, ③ 민주연합정부를 수립한 후 ④ 노동자, 농민에 의한 정부를 수립한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신 부장은 이날 2시간에 걸친 중간 수사 발표와 기자회견을 통해 민청학련의 배후는 1. 전 인혁당 당수 도예종과 여정남 등의 불순 세력, 2. 재일조총련 비밀 조직망원 곽동희와 곽의 조종을 받은 일본공산당원 다찌가와 마사끼, 하야가와 등 일본인 두 명, 3. 기독학생총연맹 간부진 4. 주모 학생과 친분이 있는 유근일 등 4 갈래가 있었다고 설명하였다. 신 부장에 의하면 민청학련은 지도부 밑에 서울과 지방의 각 대학 총책을 두고 4·3 데모가 실패할 경우에 대비하여 제2선 지도부를 따로 구성했었다.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은 이날 민청학련 사건 수사상황을 발표한 뒤 「정부는 옥석을 가려 일시적 과오로 반국가적 불법단체의 성격을 알지 못한 채 부화뇌동한 자는 엄중히 훈계, 장래를 위해 관용할 것이나, 공산계열의 노선에 따라 학원가에 침투, 암약해온 불순세력에 대해서는 차제에 단호히 그 뿌리를 뽑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부장은 이번 수사를 통해 「많은 선량한 학생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순용공세력의 책동에 이용당해온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히고 국민들이 계속 이 사건수사에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은 사건 주동자들이 폭력혁명에 의해 대한민국 정부를 엎어버리고 공산계열의 노선에 따르는 소위 노농정권(노동자ㆍ농민의 정권이라는 뜻)을 수립하기 위해 1단계로 학원 내 각종학생서클을 통해 유신체제와 정부정책을 비민주적 독재로 단정, 선전하는 한편 세계적 경제파동으로 인한 경제의 어려움을 정부의 잘못으로 말한 후 2단계로 4월 3일을 기해 일제히 봉기 폭력-유혈 데모로 중앙청 청와대등 주요정부기관을 점거해 정권을 인수하려 했다고 발표했다.
2005년 과거사위원회(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 한겨례 신문 2005년 12월 7일
유신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탄압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