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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방 문익환 목사 부친묘 성묘

6월항쟁에서 보여준 민중의 저력은 군부독재의 작전상 후퇴인 6.29 선언을 끌어냈다. 군사독재정권은 유화책으로 일련의 양심수 석방조치를 취한다. 물론 모든 양심수가 감옥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진주교도소에서 복역하다 석방되어 부친의 묘소를 찬은 문익환 목사.
1976년 3월 ‘민주화만이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 ‘3ㆍ1민주구국선언’으로 첫 옥고를 치른 문 목사는 1979년 12월까지 석방과 재수감을 되풀이했다. 1980년 5월 계엄치하에서 ‘YWCA 위장결혼사건’으로 구속, 1986년 5월에는 인천사태와 서울대의 과격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4번째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 문 목사는 1992년 3월까지 5차례, 12년이 넘는 옥중생활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