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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화와 민주화로의 여정

1945년 8월 일제로부터 해방된 우리 민족에게는 두 가지의 시대적 과제가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완전한 자주·독립국가 건설이요, 다른 하나는 일제잔재 청산을 통한 민족국가 건설이었다. 그러나 결론을 앞세우면 우리는 이 모두에 실패하고 말았다. 국토는 남북으로 반토막이 났고, 친일파 청산 역시 제대로 매듭짓지 못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숙제를 놓고 20세기 후반 반세기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군정 3년을 거쳐 1948년에 구성된 제헌국회는 당시 국민적 염원을 담아내고자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법률 제3호로 제정했지만 이승만 정권 하의 시대적, 정치적 상황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친일세력들의 방해책동으로 반민특위는 중도에 와해되고, 이로 인해 친일청산 문제는 다시 기약 없는 ‘역사의 숙제’로 남게 됐다.
그로부터 55년이 지난 2004년 3월 국회는 ‘일제강점 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반민특위’가 부활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우리민족에게 다시 주어진 셈이다.
특별법 제정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비록 여야 합의로 통과되긴 했지만 법 제정 과정에서는 적잖은 진통과 논란이 있었다. 이는 친일청산 문제가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뜨거운 논쟁의 대상임을 반증한 것이라고 하겠다.
특별법을 근거로 지난 2005년 5월 31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약칭 반민규명위)가 출범했다. ‘제2의 반민특위’랄 수 있는 반민규명위는 반민특위가 못다 한 친일청산을 4년간의 활동기간 내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1949년 반민특위가 중도에 와해된 이후 친일청산 문제는 그간 우리사회에서 일종의 금기로 치부돼 역사학계에서조차 이 분야 연구를 기피해 왔다. 반민규명위의 초대 위원장을 지낸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그간 우리 역사학계에서 친일파 문제를 다룬, 제대로 된 논문 한 편이 없다”고 수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뒤늦었지만 친일청산은 이제 본 궤도에 올랐다. 반민규명위는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의 반민족행각을 낱낱이 밝혀내 그 진상을 역사 앞에 기록하고 있으며,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친일의 대가로 형성된 재산을 조사해 이를 국가에 귀속시킴으로써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사회정의를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가고 있다.
두 위원회는 독립기관이나 자료 협조 등 필요한 부분은 상호 긴밀히 협력해 역사적 소임을 주어진 기간 내에 마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멀지 않은 날에 친일파 논쟁, 혹은 일제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운 광복절을 맞게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