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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1979년 계엄 상황 모습

1979년 10월 15일 오전 부산대학교 캠퍼스 곳곳에 ‘민주선언문’과 ‘민주투쟁선언문’이라는 두 종류의 유인물이 뿌려졌다. 그 내용은 “학원 민주화, 언론 자유, 인권 보장, 유신헌법 철폐, 독재정권 퇴진!”의 내용이었다.
전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학생들은, 다음날인16일 오전 10시경, 한 학생이 “유신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합시다!”하고 외치자 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시위대는 7000여 명에 이르렀고, 시위대는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시내 중심가로 진출했다. 시민까지 가세한 시위대는 수만 명으로 늘어났고, 파출소와 박정희의 사진이 불태워지는 등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파급되자, 박정희 정권은 휴교령을 내리고 18일 자장을 기해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이미 시민들의 분노는 계엄군의 총칼로도 제압당하지 않았다. 시위는 마산으로 번졌으며, 정부는 20일 마산 창원지역에 위수령을 발동하였다.
이것이 바로 10.26의 도화선이 된 부마 민주항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