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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화와 민주화로의 여정

한국 경제의 누적된 위기는 1997년 IMF로 폭발했다. 1990년대 기업도산 사태는 김영삼 정권이 세계화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중에 경상수지적자가 높아졌고 외환보유고가 급감한 속에서 발생했다. 한보철강 부도에 이어 삼미그룹?한신공영?진로그룹?해태그룹 등 모두 12개의 대기업이 줄줄이 부도로 문을 닫았다. 기아그룹 등 수많은 기업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 부실채권이 증대했다.
1990년대에도 대형 참사는 이어졌다. 1993년 3월 서울발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 전복돼 78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한국철도 100년 사상 최대의 참사로 기록됐다. 1997년 8월 서울을 출발, 괌으로 가던 대한항공 보잉747 여객기가 추락해 229명이 숨졌다. 이밖에 1993년 10월 서해 훼리호 침몰, 1994년 10월 성수대교 상판 붕괴 사고, 1995년 4월 대구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과 6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이 있었다. 1999년 6월의 씨랜드 수련원 화재사고는 유스호스텔의 비상구 미흡, 교사들의 관리 소홀로 인명 피해가 컸다.
1990년대에는 살인?폭력 등 강력사건이 크게 늘어났는데, 도덕 불감과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 데 따른다. 1994년 9월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벌인 ‘지존파’를 본떠, 1996년 10월엔 생매장 살해사건을 벌인 ‘막가파’가 온 국민을 경악케 했다. 1997년 신창원 탈옥 사건은 발생 2년만에 해결됐다. 성폭력, 학원폭력 문제도 뜨거운 이슈였다.
1997년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1998년 유엔사령부 소속 김훈 중위의 권총 자살 의혹사건은 1990년 군?경 사건 사고의 대표격이다. 이 기간 군 의문사와 관련한 유가족협의회 활동도 두드러졌다. 운동선수들의 병역비리도 터져나왔다.
1991년 시국과 관련해 김기설, 천세용, 이정순씨 등이 자살한 사건도 발생했다. 대학가 시위?집회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사건도 이어졌다. 1993년 6월 김춘도 순경 사망사건이 일어났고, 대학 구내에서 프락치로 몰려 설인종, 이석씨가 구타로 사망했다.
한국전쟁 중 발생한 노근리 사건은 미군의 잔학상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미군 범죄에 대한 규탄시위도 계속됐다. 1992년 동두천 시민들이 미군의 윤금이씨 살인 만행을 규탄하는 가두시위를 벌였다. 주한미군의 독극물 무단방류도 폭로됐다.
대표적인 사학비리 사건으로는 1994년 상문고 사건을 들 수 있다. 학부모들로부터 찬조금과 보충수업비 17억여원을 유용하고 내신성적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상문고 교장 상춘식이 구속됐다. 상문고 사태는 2002년 대법원 판결로 상춘식이 패소하면서 일단락됐다. 이밖에 1999년 10월 백범 암살범 안두희가 인천 집에서 박기서씨에게 몽둥이로 맞아죽은 사건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