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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5.16군사쿠데타와 제3공화국

경제원조를 받기에 급급했던 박정희 정권은 국민들의 대대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일회담을 서둘렀다. 회담을 주도하던 김종필은 ‘제2의 이완용이라 불려도 상관없다’고 하여 국민들의 반발심을 더욱 자극하였다. 그리고 64년에 들어서 갖가지 풍문이 나돌아, 3월 비준설이니 5월비준설이 회자되었다.
이에 학생들은 3월 24일 서울대 문리대 시위를 시작으로 6월 3일, 계엄령이 발효되어 군이 투입되기까지 70여 일 동안 치열하게 정권퇴진 투쟁을 벌인다.
그런데 3.24 시위 후 연행되었던 경기고 인맥의 학생들에게 괴소포가 전단되었다. 내용물은 일본잡지와 미화 100달러, ‘동지의 영웅적인 투쟁을 찬양한다’는 등의 내용물이 들어있었다.
정보당국에서 이들에게 용공혐의를 씌우기 위해 미리부터 공작을 해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