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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학생 석방 요구 서울대 고려대생들의 연합시위

64년에 들어서면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시위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경찰과 정보 당국은 학내에 수많은 정보요원을 투입하여 학생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시위에 대비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시위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의 학생운동 지도부는 각자 시위 날짜를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다 6.3의 전설적인 인물인 서울대 문리대의 김중태가 3월 24일에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한 고대와 연대의 지도부는 부랴부랴 이 날에 시위를 계획하고 준비에 착수한다.
오후 1시 20분 문리대 광장에 모인 500여 명의 학생들은 ‘제국주의자 및 민족반역자 화형식’을 거행한 뒤 곧바로 가두시위에 돌입했다.
박정훈과 최장집이 이끄는 고대와 안성혁의 연대도 같은 날 시위를 벌이게 된다. 결국 수많은 학생들이 연행되어 구속되거나 학사징계를 받았다.
이후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어 연일 학생들이 연행되고 부상당하는 사태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