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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외교 반대 학생 시위

일제가 물러간 지 20년도 안 된 상황에서 쿠데타에 의해 정권을 탈취한 세력이 굴욕적으로 국교를 정상화하려고 하자 국민들은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통성이 취약한 군사정권은 하루속히 경제를 살릴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일본이 미끼로 던진 청구권 자금에 현혹되었고, 또 미국의 세계 전략에 따른 한일국교정상화를 수용함으로써 미국과의 관계를 순탄하게 유지하려고 하였다.
박정희 정권에게는 이런 절박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국민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회담을 성사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따라서 시위 진압도 강경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학생들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감옥에 보내졌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시위 후에 괴소포를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