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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군사쿠데타와 제3공화국

해방 후 민주당은 구파와 신파로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4.19혁명 후 1960년 7월 29일 실시된 의원내각제 하에서의 총선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거두고 집권하게 된다. 이때 구파와 신파는 권력을 분점하기로 합의하고, 대통령에 구파인 윤보선, 총리에 신파인 장면을 선출한다.
하지만 이런 불안한 동거는 곧 막을 내린다. 61년 2월 20일에 민주당 구파가 떨어져 나가 신민당을 창당하면서 완전 분열하게 되어 장면 정부는 허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5.16군사쿠데타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쿠데타 세력은 1962년 헌법을 다시 대통령중심제로 고치고 처음 약속과는 달리 민정이양을 하지 않고 박정희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는데, 이때 민주당은 다시 분열하여 윤보선을 중심으로 한 구파는 민정당을 창당하고, 박순천을 중심으로 한 신파는 민주당을 창당한다.

민정, 민주, 자민, 국민 등 야당과 종교, 사회단체를 망라해 구성된 '대일굴욕외교반대범국민투쟁위원'는 1964년 3월15일 하오 부산과 목표에서 첫 성토대회를 열고 '박정희 정권은 즉각 한일회담을 중지하고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외쳤다. 부산 경남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이날 대회에는 4만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이날 윤보선 민정당 대표최고위원과 김도연, 김영삼 씨등이 연사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