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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회담반대 서울대 교내집회에서 치뤄진 이케다, 이완용 화형식

한일 국교정상화는 배후에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국과 일본에 압력을 가하는 미국이 있음을 한국 국민들은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시민과 학생들은 ‘우호’를 가장하여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려는 미국을 함께 규탄했다. 고교생 500여 명은 미국 대사관 앞에서 이를 규탄하는 집회를 갖기도 했다.
박정희는 쿠데타 후 1961년 11월에 일본을 방문하여 수상인 이케다 하야토와 회담을 갖고 한일회담을 추진했는데, 시위대는 회담 중지를 요구했다. 이케다 수상은 노골적으로 한일회담을 통해 한국을 경제적으로 지배하려는 저의를 드러냈다. 그래서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생 3500여 명은 서울대학교에서 집회를 갖고 매국노 이완용과 이케다의 화형식을 거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