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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동시대 풍경

70년대를 특징짓는 가장 상징적인 풍경은 새마을운동일 것이다. 농촌뿐 아니라 도시와 직장에까지 뿌리를 내린 새마을운동은 국민생활의 대명사가 되었다. 아침으로 일찍 출근하여 거리청소를 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보기 일쑤였고, 새마을 마크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새마을 복장을 입은 관공서 직원들의 모습은 당시의 대표적 풍속도 가운데 하나이다.
유신의 폭압정치는 사회 모든 영역에 걸쳐 시행되었다.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유신정권은 국민들의 복장까지 간섭하기 시작했다. 사회 풍기를 문란케 한다는 이유로 장발과 미니스커트까지 단속을 실시했다. 길거리에서는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머리가 긴 젊은이들이 숨바꼭질을 하듯이 숨어 다녔으며, 단속반에 걸려 잡혀온 사람들이 머리를 잘리기 위해 줄지어 앉아 있는 모습을 경찰서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고, 즉석에서 자르기까지 하였다. 또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성들에게는 자를 가지고 규정을 초과했는지 재보는 웃지 못 할 풍경이 속출했다. 전체주의적 통제도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또 전국에서 개발 붐이 일어 부동산 투기가 성행했는데, 이것을 가정주부들이 주도하여 ‘복부인’이라는 용어가 탄생했으며, 춤바람을 비롯한 치맛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74년 8월 15일에는 서울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하철이 개통되었는데, 이 날 국립극장에서 광복절 기념식을 하던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사망하여 전국을 슬픔의 도가니로 만드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75년부터는 재일동포 고국방문단이 구성되어 고향을 방문하고 추석 성묘를 하기 시작했는데, 해외 동포들에게까지 남북이 이데올로기 쟁탈전을 벌이는 상황이 전개되어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가에는 반유신 데모를 막기 위해 전투경찰이 상주했고, 학교 내에 정보경찰과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상주하며 일상적으로 학생들의 동태를 살피고 감시하였다. 이는 유신체제의 전유물인 정보 공작정치가 어느 정도 심각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당시의 풍속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