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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 최종길 전 서울대 법대 교수

박정희 정권은 사실상 영구집권을 위해 10월유신을 단행했으나 이에 저항하는 국민들의 투쟁도 점점 강도를 더해갔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은 정권이 위기에 닥칠 때마다 대형 간첩단 사건이나 조직사건을 조작하여 반공을 빌미로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한 명분으로 삼곤 했다.
1972년 10월 2일 서울대 문리대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 이후 유신을 반대하는 학생 시위는 전국의 주요 대학으로 급속히 파급되었다. 서울대 법대 교수였던 최종길 교수는 시위 참여 학생들에게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 주었고, 중앙정보부를 비롯한 정보기관에서는 이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도 있던 차였다.
그러던 중 1973년, 정부는 유럽을 거점으로 한 대규모 간첩단을 적발하여 수사 중이라고 발표하였고, 최종길 교수도 혐의자 중 한 사람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자 최 교수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진해서 중앙정보부에 찾아가 조사를 받았는데, 3일 후 중앙정보부 마당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당국은 조사를 받던 최 교수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투신자살했다고 조작하여 발표했다.
중앙정보부의 가혹한 고문이 최 교수를 죽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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