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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범민족대회

1991년 8월 12일, '91 범민족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 속에 서울 경희대에서 개막식을 가졌다. 전민련, 전대협, 전농 등 36개 단체로 구성된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범추본, 공동위원장 강희남 목사)는 오후 7시 경희대 노천극장에서 7백여 명의 재야단체 회원, 학생, 시민 등이 참가한 가운데 개막식을 갖고 "정부의 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범민족대회"를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범추본은 대회기간 동안 13일 북한 대표단 임진각 환영대회와 출정식, 14일 통일대토론회, 15일 범민족대회 본회담과 남, 북, 해외동포 합동 문화공연 등의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날 자정경 전국 주요도시를 돌며 국토종단대행진을 벌인 '통일선봉대' 1천여 명이 서울에 도착 경찰 봉쇄망을 뚫고 경희대에 합류했다. 

8월 13일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와 전대협은 범민족대회 이틀째인 오후 7시 경희대 노천극장에서 시민·학생 등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범민족대회사수결의대회'를 갖고 "현정권의 범민족대회 방해책동에 맞서 끝까지 투쟁, 이 대회를 민족통일의 분수령으로 만들자"고 결의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현정권은 남북간 민간교류를 봉쇄,통일을 독점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비핵지대화 선언, 연방제통일안 채택 등을 촉구했다.경찰은 전경 70개중대 1만여명을 대회장인 경희대와 외국어대등 학교일대와 터미널 역등에 배치,대회장출입을 막는등 원천봉쇄에 나섰다.

8월 14일, 경희대에서 2만여 명의 학생, 재야단체회원 등은 '통일대축전 성사 결의대회'와 '통일대토론회, 91범민족대회 전야제 등의 행사를 밤늦게 까지 열고, 북쪽 대표단의 대화 참가 허용과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남추본)에 대한 탄압 중지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전대협 소속 학생 1만5천여 명은 이날 오후 7시경 서울경희대 노천극장에서 '남북 해외동포 청년학생 통일대축전 정치회담 성사를 위한 결의대회'를 갖고 "정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정치회담을 반드시 성사시킬 것을 결의했다. 

8월 15일, 남, 북, 해외동포 등 3자 범민족대회 대표단은 서울 경희대에서 열릴 예정이던 '범민족회의'가 정부의 불허로 열리지 못하게 되자 각각 서울, 판문점 북쪽지역, 일본 도쿄에서 회의를 분산개최하고,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한 지지와 남북한 비핵군축을 촉구하는 내용의 공동결의문을 동시에 발표했다.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는 이날 오후 4시 서울 경희대 크라운관에서 김희선 서울민협 의장, 이철상 전대협 의장권한대행, 이범영 전청대협 의장 등 남쪽 대표단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식대회를 열고, 남과 북, 해외동포 3자가 합의한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2차 범민족대회 공동결의문'을 추인했다. 범추본은 이 공동결의문이 9일부터 13일까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일본본부를 매개로 남과 북 대표단이 팩시밀리를 이용해 사전합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3자 대표단은 이 결의문에서 "남과 북에 서로 다른 두 제도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서로 먹고 먹히지 않는 연방제 방식으로 조국을 통일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도임을 재확인하고 이에 대한 일치된 지지를 표시한다"고 밝혔다.

한편 범민족대회에 참가하려던 대학생 3천여 명은 15일 대회가 무산되자 경찰의 저지로 무산된 데 항의해 서울 시내 곳곳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오후 6시경부터 집결지인 연세대를 빠져나와 을지로 입구와 미도파, 신세계백화점 앞 큰길에 모여 "비핵군측, 연방제 통일"등의 구호을 외치며 2시간여 동안 시위를 계속했다. 학생들은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선 경찰에 화염병과 보도블록 등을 던지며 곳곳에서 맞섰으며 신세계백화점에서 세종호텔에 이르는 퇴계로 일대와 미도파백화점, 국도극장 앞 큰길을 완전히 점거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학생 1천5백여 명은 이날 오후 2시 30분경 서대문구 홍제동 홍제역 앞길에 모여 임진각으로 향하려다 경찰이 막자 도로를 점거한 채 1시간 남짓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또 오전 8시 50분경에는 파주군 문산역 앞에서 임진각으로 향하던 대학생 50여 명이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은 이날 90개 중대 1만2천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시위진압에 나섰으며 7백여 명을 연행했다. 학생들은 이날 밤 다시 연세대에 모여 밤샘농성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