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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풍경

박정희 정권은 쿠데타 직후 혁명재판부와 혁명검찰부를 설치하여 과거의 각종 범죄에 대해 단죄하기 시작한다. 정적들에게 범죄 혐의를 씌워 제거하기도 하지만, 이정재와 유지광 등 이른바 정치깡패들을 체포하여 목에 명패를 걸고 시민들 앞에 사죄하는 행진을 하게 한 뒤 처형하는 비인도적인 처사도 서슴지 않았다.
또 경제개발로 인해 전국이 공사장으로 변했다.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공업단지가 들어섰다. 한강에 다리들이 신설되고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도로가 새로 뚫리고, 비포장도로가 포장되었으며, 도심 곳곳에 육교와 고가도로가 건설되었다. 도시 재개발 붐이 일어 도시미관을 해치는 판자촌을 강제로 철거하고 아파트를 비롯한 재건축을 추진하였다. 이로 인해 수많은 빈민들이 거리로 내몰렸고,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또 떠나야 했다. 강남 개발과 여의도 개발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려 복부인이라는 용어가 생겨날 정도였다.
농촌에서는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어 농촌주택들이 개량되고 마을 안 길이 포장되었으며 하천이 정비되고 다리들이 만들어졌다. 이와 함께 소득증대 사업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도심에서는 경찰과 시민들 사이에 장발단속을 위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으며, 즉석에서 머리를 깎이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미니스커트가 유행하기 시작하여 자를 든 경찰관과 실랑이를 벌이는 여성들도 이 시기의 웃지 못 할 추억의 장면이다.
1.21사태로 향토예비군이 창설되어, 일하면서 싸우느라 주민들의 고통이 가중되었다. 그리고 주한미군 감축으로 인해 안보불안이 가중되었으며, 북한의 무력 도발이 자주 발생하여 이를 규탄하는 대규모 궐기대회가 자주 열린 것도 이 시기의 빼놓을 수 없는 풍경들이다.
국민교육헌장이 공표되어 이를 외우느라 진땀을 흘리는 학생들의 모습도 4, 50대의 눈에는 생생하게 남아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