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전교조의 설립과 교육민주화 운동

85년 [민중교육] 사건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교사운동은 86년 5월 10일 '교육 민주화 선언'으로 이어졌다. '교육민주화 선언'은 그동안 억눌려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했던 교사들에게는 기름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교사운동의 조직화와 대중화의 계기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87년 6월 민주화운동과 7월부터 진행된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불붙기 시작한 사학민주화, 교육민주화 투쟁을 바탕으로 교사 조직은 전국적인 틀을 모색하게 된다. 교원노조의 문제는 이미 87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결성 당시부터 교사 대중 조직의 궁극적인 형태로써 논의 되어왔다. 당시 전교협 지도부는 교원노조 건설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전교협의 조직적 전망' 이란 발제문을 만들었다. 이후 8월 13일 전교협 제1차 대의원대회에서는 88년 하반기 주요 사업으로 교원의 노동3권 보장을 핵심으로 하는 교육악법철폐 투쟁이 결정됐고, 각 시도별 결의대회와 2차 대의원대회에서도 교원의 노동 3권 쟁취 투쟁이 주요사업으로 전개된다.
전교조에 대해 정부는 이른바 색깔 입히기에 모든 힘을 기울인다. 전교조 교사들이 행하는 참교육의 내용을 좌경 의식화 교육이라 몰아 부치고, 전교조에 대한 의식화 매도는 이후 전교조가 합법화되는 시점에 이르기까지 전교조를 자유롭지 못하게 할 정도로 국민들의 뇌리에 박히게 된다.
드디어 89년 5월 28일 이미 결성식 장소이었던 한양대와 건국대를 비롯해 연세대, 성균관대 등 서울 시내 주요대학들이 전날부터 전경들에 의해 2∼3중으로 완전 포위되어 있는 상황에서 80여명의 교사 등 200여명이 연세대 학생회관으로 모여들었고, 핸드 마이크를 든 윤영규 위원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결성 선언문을 낭독했다. 한국 교육/노동운동사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조직의 탄생치고는 너무도 초라했고, 이후 고난의 길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89년 전교조의 결성은 교육민주화에 대한 중고등학생운동의 폭발적 진출을 가져왔다. 전교조 결성으로 촉발된 학생들의 교육민주화와 해직된 스승들을 지키기 위한 투쟁은 우선 250여개교에서 연인원 50만명 이상이나 참석한 것으로 기록됐다. 특히 전교조 결성 이전까지 학생운동은 학생회 직선제, 사학비리 척결등 학내문제에 국한되다 전교조 결성으로 교육민주화를 요구하는 수준으로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