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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전 열사 민주국민장

1988년 6월 4일, 숭실대 학생회관 5층 옥상에서 이 학교 학생 박래전 군이 ‘광주는 살아있다.’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 군사파쇼 타도하자’라고 외친 후 몸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붙이고 분신했다. 유서에는 '광주학살원흉처단' '통일논의의 자유로운 보장' 양심수 즉각 석방'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전신에 중화상을 입고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박래전 군은 분신 이틀만인 6일 낮 12시 30분경 숨졌다. 

숭실대 총학생회와 유족, 재야단체 대표들은 <민중해방 열사 고 박래전 민주국민장>으로 치르기로 하고 장례준비위원회(위원장 이부영, 이창복)를 구성, 장지 및 장례절차에 관해 협의했다.  6월 12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경희궁시민공원(구 서울고)에서 유가족과 재야인사, 학생, 시민 등 4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민중해방열사 고 박래전 민주국민장>(장례위원장 백기완)으로 치러진 이날 장례식은 백기완 씨의 조사, 신경림 시인의 조시 낭독에 이어서 서울대 이애주 교수의 썽풀이춤 등 순으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박래전 군의 유해는 이날 오후 4시부터 40여 분간 서울시청 광장에서 노제를 지낸 뒤 종각~안국동 로터리~명륜동~대학로~종로5가~청량리를 거쳐 오후 10시 30분 쯤 장지인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묘지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