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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단지 시위 관련자 및 공판

박정희 대통령의 3공화국은 산업화를 통한 수출산업 육성으로 경제를 부흥시키는 전략을 취한다. 따라서 기업에게 온갖 특혜를 제공하여 공업화를 서두른다. 그러자 농촌의 인구가 대대적으로 도시로 이동하여 포화상태에 달한 도시는 심각한 주택문제에 직면한다. 이들 이농인구는 도시 변두리에 무허가 판자촌을 형성하고 정착하게 된다.
시 당국은 도시미화정책으로 무허가 판자촌을 강제로 철거시키고 재개발을 추진하지만 갈 곳이 없는 이들은 계속 지역을 옮겨 다니며 무허가 판자촌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상계동, 봉천동, 미아동, 시흥동 등이 이런 지역이다.
68년에 서울시는 광주 지역에 대규모 이주단지를 조성하여 이들에게 이곳에 정착하도록 부지를 불하한다. 하지만 아무런 생계 능력이 없는 이들은 시 당국에 생계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시는 이를 외면함으로써, 이곳에 이주한 5만여 명의 주민이 성남출장소로 몰려가 난동을 피우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것이 광주대단지 사건이다.